brunch

매거진 不ON 문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너 Mar 10. 2020

바이러스는 죄가 없다

<사랑할까, 먹을까> (황윤 저/ 도서출판 ‘휴’)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나 진정국면으로 가라앉을지 불안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싸움은 무모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일이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로 중무장을 해보지만 지구라는 순환계 안에 공존하는 한, 나 혼자 완벽한 위생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와중에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접하니 세상이 온통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지배를 받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스카상 네 개 부문 석권이라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 속에서 홀로 완벽한 위생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느꼈던 건지 마스크로 중무장한 시민들조차 잠시 무장을 해제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알고 보면 바이러스나 기생충은 우리와‘지구’라는 생태계를 공유하는 존재다. 신종 바이러스의 감염원이 우한의 수산시장 야생박쥐라느니 멸종위기의 천산갑이라느니 호들갑을 떨지만, 박쥐도, 천산갑도, 메르스의 낙타도, 구제역의 돼지도 모두 우리와 운명을 같이하는 지구 생태계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사실 바이러스와의 공존은 채집과 수렵으로 생존하던 인류가 야생상태의 짐승을 사유화(사육)하면서 자초한 변화다. 바이러스는 짐승과 사람을 오가며 번식의 방식과 범위를 넓혀왔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바이러스가 자신의 후손을 널리, 그리고 오래 퍼뜨리기 위해 숙주(사람과 짐승)를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고 설명한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감기도 사실은 바이러스의 생존전략 때문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세계적 규모의 전염병(Pandemic)은 번식이라는 본능에만 충실했던 바이러스보다 그 본능을 넘어선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은 특히 치명적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밀폐된 축사 안에서 평생 똑같은 자세로 먹고 자고 배설하면서 동물성 사료와 항생제로 연명하는 동물들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할 수가 있을까.


돌아보면, 신종플루(돼지독감), 조류독감(AI), 중동호흡기 증후군(MERS), 스페인독감 등 세계적인 공포가 되었던 전염병은 모두 돼지나 닭과 같은 공장식 축산의 폐해였다.


공장식 축산업의 위험성을 실감 나게 폭로한 영화감독 황윤의 책 <사랑할까, 먹을까>에는 서울대학교 우희종 면역학 교수와의 인터뷰가 소개된다.


“거꾸로 보면 바이러스는 살고자 노력했을 뿐 인간이 악독한 짓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변하는 겁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바이러스나 병원체는 오히려 인간입니다. 수많은 인수공통 전염병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우리가 만들고 있고, 그러면서 방지하겠다고 인간 위주의 시각으로 독한 소독약을 뿌리며 방역을 하고 있어요. 새로운 질병의 등장은 인간에 대한 경고에요.” (황윤, 「사랑할까, 먹을까」중)


주말만 되면 치킨 배달을 떠올리고, 회식만 하면 으레 돼지고기, 소고기만 생각하는 우리들이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와 손 소독제로 전신무장을 하는 것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모습인가. 수많은 질병과 공해를 양산하는 공장식 축산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평생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정신차릴 틈도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를 넘다 보니 우희종 교수의 서늘한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우리의 생명을 지불해야 되겠죠. 우리가 다른 생명을 싸게 활용했다면...”(황윤, 「사랑할까, 먹을까」중)



황윤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존경받는 환경운동가 제인구달이 극찬했다는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찍었다. <사랑할까, 먹을까> 역시 같은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정육점에 진열된 두툼한 고기의 선홍색 빛깔과 마블링은 육식이라는 욕망의 기호다. 우리는 잘 포장된 고깃덩어리와 개별적 생명체(소나 돼지)를 금방 연결 짓지 못한다. 육식이라는 즐거움이 다른 생명체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또한 곧잘 생략된다. 사육의 불편함과 도살의 죄책감을 대행해주는 ‘공장식 축산’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 <사랑할까, 먹을까>를 읽다보면 공포의 바이러스나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 현상과 공장식 축산의 상관관계, 육식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조장되고 과장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비건(채식주의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즐겨 먹는 치킨과 삼겹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공장식 축산이냐 비건이냐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기 보다는 좀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꺼리를 주는 책.

매거진의 이전글 존재를 이탈한 욕망의 파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