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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14. 2016

안녕, 피아노

결국 아내는 피아노를 처분하기로 결심 했다. 정신없는 업무시간에 경쾌하게 울려대는 카톡메시지 창에 그렇게 적혀있었다. 어제 집정리를 하면서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아내에게 유효한 의견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내의 카톡은 꽤 단호하게 느껴졌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다시 작성하던 문서로 눈을 돌렸지만 싱숭생숭했다. 그리고 업무가 다 끝나고 잔무처리를 위해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아내의 카톡이 생각난거다.

아내는 이 고물 피아노로 돈을 벌었다. 분양받은 아파트 때문에 꽤 큰 목돈이 다달이 빠져나가던 신혼, 피아노 교습으로 벌어들이던 아내의 수입은 궁핍한 말단 공무원에겐 제법 요긴했다. 수완이 괜찮은 편인 아내가 동네 아주머니들을 상대로 사업을 확장하는 동안 나는 휴일을 이용하여 수업계획서니 학부모 통지문이니 따위를 대리 작성해주기도 했고 수위 아저씨의 눈을 피해 아파트 단지 곳곳에 불법 광고물을 부착하기도 했다.

사실 귀찮은 일이 많았다. 아내가 상대하는 원생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를 다니는 코흘리개들이었고 쉬는 날에도 늘 아이들로 바글대는 집에서 나는 꽤 자주 짜증을 냈던 것도 같다. 야간근무를 하던 때라 더 그랬다.  

아무튼 그렇게 십년이 조금 넘는 세월을 함께 해온 피아노가 갑자기 집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피아노를 처음 들일 때도 중고로 구입했고, 워낙 많은 아이들이 뚱땅대던거라 건반이며 페달이며 정상은 아니다. 아이의 공부방 한켠에 지금은 거의 장식장처럼 덩그라니 놓여진 모습이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화이트톤의 인테리어를 원하는 아내의 눈에 갈색 피아노가 고와 보일리 없다.

그래도 난 섭섭하다. 비록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내 결혼생활과 내내 함께 해온, 몇 되지 않는 물건이기에 느끼는 감정인가보다.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칠때면, 나에게 운전을 배울 때 당했던 분풀이를 하나 싶을 정도로 혹독했던 아내와 다투기도했고 (피아노는 철저히 도제식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믿었다) 아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오솔레미오>를 불렀던 닭살돋는 기억도 난다.

내 서운함은 그 기억들에 대한 집착에 다름아니다. 피아노가 없어지고 난 후 그 휑한 공간을 보게 될 것이 두려운거다. 부모도, 아이도, 그 끈끈한 인연들도 하나 둘 멀어지고 헤어지는 것이 세상사 이치라지만 물건 하나에도 이리 집착하는 내가 앞으로 닥칠 이별들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 또한 걱정이다.  

예정대로라면, 불꺼진 공부방 한켠에 아직은 무거운 덩치를 어쩌지 못해 불편하게 웅크리고 있는 피아노가 며칠 안에 내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가 내던 그 경쾌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다시 들을 수 없다니...

하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주방과 피아노를 오가며 가사와 돈벌이를 병행하던 '젊은' 아내의 모습도 이제 다시 볼수 없게 된지 꽤 오래지 않나. 시간이 지나가듯 불현듯 그렇게 가는거지. 모두 내게 왔다가 기척도 없이 지나가는 것들이니 군소리 할 것 없다. 오늘 집에 가면 먼지 낀 건반이나 한번 닦아줘야겠다. 바튼 기침같은 소리를 내겠지. 이 녀석,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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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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