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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출 남 May 29. 2023

봄비 내리는 날, 커피 한 잔의 향기 속으로

커피추출과 습도의 상관관계



그저께, 새벽에 시작된 봄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창 밖의 세상은 미세한 물방울들이 모여 흐릿한 그림을 그려내며, 습도는 높아져만 갔다. 이런 날, 내 손에 들려오는 것은 담백하면서도 달콤한 카라멜라도 원두로 만든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향과, 플로럴 한 향이 가득한 에티오피아 시다모 아르고베나 물루게타 문타샤 레게제 로트 내추럴 원두로 만든 핸드드립 커피의 청량한 향기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과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했다. 커피 원두를 분쇄하고, 기계에 넣어 추출하고,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우유를 넣어 완성했다. 하지만 이날의 에스프레소는 분명히 달랐다. 분쇄 과정에서 커피 입자 사이에 습기가 끼어버린 것 같았다. 그 결과, 에스프레소 추출 과정에서 물총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커피의 맛은 예상과는 다르게 밍밍했다.


이어서 준비한 핸드드립 커피도 똑같았다. 이 특별한 원두는 평소 산미가 있고, 플로럴 한 향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원두의 향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았고, 쓴맛이 도드라져 상큼한 맛은 더욱 희미해졌다.

나는 창가에 앉아, 이 모든 변화를 조용히 관찰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습도의 변화가 커피의 향과 맛에 이런 만큼의 영향을 줄 줄이야. 봄비를 받으며 창 밖을 내다보니, 이런 변화가 오히려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와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늘의 커피가 완벽하지 않았다 해도, 이것은 단순히 사람의 힘을 넘어서는 자연의 힘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커피 한 잔의 맛과 향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절의 변화, 기후의 변화, 미세한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커피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조금은 밍밍한 커피를 마시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어떤 커피의 맛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것이 또 다른 일상의 향기를 더해줄 것임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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