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 - 네이버 어학사전 -
J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녀를 만날수록 나는 자꾸만 초라해졌고 촌스러워졌으며 꽉 막힌 꼰대가 되었다.
EP1. 처음 학원에 들어와서는 한동안 매일 먹거리를 들고 출근하던 그녀였다. 과일이나 도넛 혹은 커피나 피자 등을 두 손에 가득 들고.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야 좋았지만 왜냐는 물음에 남자친구(이하 남친)가 사서 쥐어준다며 좀 특별하단다. 뭔데? '이혼남'.
EP2. 당시 한참 유행하던 싸이월드에서 어느 날인가 여행을 간 J의 모습을 보았다.
"쌤, 여행 갔었구나. 남친이랑?"
"아니, 전남친이랑"
생긋 웃으며 말하는 J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졌었나 보다.
"쌤 놀랐구나? 난 헤어졌다고 촌스럽게 전남친이랑 웬수같이 지내지 않아요.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밥 먹고 싶으면 밥 먹고, 여행가고 싶으면 쿨하게 여행도 가요"
EP3.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던 전남친과의 커플링을 보아온 그녀의 현남친.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그 커플링을 끼고 나온 J에게 묻더란다.
"J야 그 반지 뭐야?"
"응~ 이거 나한테는 이제 아무 의미없어. 그냥 손이 허전해서 낀 거야"
그렇게 새로운 반지를 얻어냈다고 했다.
EP4. 지금부터 17년 전이다. 38만원 짜리 반바지를 남친에게 받아내고, 5만원 이하의 속옷은 쳐다보지도 않으며, 3만원 미만의 밥은 밥으로 치지 않는다던 그녀. 학원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였던 J에게 친구는 나뿐이라 생일을 챙겨주려 3만원 짜리 밥을 사주던 날이었다. (참고로 J의 아버지는 택시를 운전하시고 어머니는 대장암 환자셨다. 임대 아파트에 살던 그녀의 표면적인 부분만으로 당시의 나는 J의 씀씀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두 눈과 두 귀로 확인하기 전부터 알던 사람이었다. 옆자리 선생님이 들려주던 이야기에 출연했던 J. 그런 J가 눈 앞에 나타났고, 여러 강사들 중 유일하게 나이가 같아선지 먼저 다가왔었다. 이미 선입견 덩어리였던 나는 섣불리 그녀를 맞아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글거리며 잘 웃고 친절하게 말하며, 예쁘장하게 자신을 꾸밀줄 아는 그녀라 '그래, 내가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닌데 먼저 선 긋지 말자'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열었었다. 그 또한 선입견이었는 줄 몇 개월이 지난 뒤에 알았지만.
선입견은 무조건 나쁜 것?
선입견을 갖고 누군가를 본다면 상대를 온전히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상대의 어떤 말과 행동이라도 먼저 가진 생각의 틀 안에서만 판단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빨간 셀로판지를 눈에 대고 초록 물건을 보면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하지만 누군가는 그랬다. 선입견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라고. 호랑이나 범죄자를 예로 들어 보자. '개조심' 이라고 쓰인 푯말이 있는 시골의 어느 집 앞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마주치기 전에, 그들에 대한 정보로 인한 선입견이 없다면 생각 혹은 조심성 없이 다가갔다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요즘은 여성이나 아이가 있는 집이면 주소지 기준으로 근처에 사는 성범죄자의 신상에 대한 우편물이 온다. 범죄의 특성상 재범 확률이 높기 때문에 미리 알리는 것이리라. 딸 가진 엄마의 입장으로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경우에도 한 개인의 인권보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 신상을 공개하는 것 또한 두 손 높이 들어 찬성한다. 그런데, 이 또한 선입견은 나쁜 것으로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분위기지만 그 나쁘다는 선입견을 이용해 큰 피해가 생기는 일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혹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기 전이라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다고도 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말일테지.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나이를 먹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록 선입견이 강화되는 것 같다. 설마의 물음표가 역시의 느낌표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된다. 나중에 보여준 J의 언행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크게 휘둘리지는 않았었다. 나도 모르게 벽을 두었는지 '역시' 하는 속말을 내뱉으며 생각보다 가볍게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또 모르겠다. 지금보다 몇 십년 더 살다 보면 선입견이 없어질지도.
유학에서 말하는 희노애락애오욕의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거쳐 자애로워지거나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즈음이거나. 중생(衆生)인 내가 과연 그럴 때가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