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에 당첨이 되면? 우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우선은 대출금을 갚고, 멋진 집이나 차를 사고 그리고 여행을 가야지!' 보통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라고 다를까. 따뜻한 남태평양, 어느 예쁜 섬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그 상상을 시작하는 건 마찬가지. 정말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당첨이 아니라 내가 로또가 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결혼 후 잠시 쉬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 알아보던 중 마땅한 어느 학원엘 찾아갔다. 예상보다 젊은 원장과 부원장, 그들은 부부였다. 내 나름 그 바닥에서 보낸 시간이 있음에도 2년 가까이 쉬는 동안 자신감은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면접 내내 손수건을 꼬옥 쥐고 있었다. 속으로 흐르는 땀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2시간을 넘게 끌었고, 그 긴 시간을 버틴 덕에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을 했다. 오랜만의 출근이라 긴장도 될 법한데 나답지 않게 편안했다. 규칙이라면 꼭 지켜야 하는 내가 원내 규칙도 조금은 엄한 그곳에서 자신감 물약이라도 마신 것처럼 날이 갈수록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지켜달라 부탁받았던 그 규칙들을 깨고 있음에도 원장부부는 내게 별 말이 없었다. 그렇게 출근 이후 첫 시험, 결과는 올레! 아이들의 성적은 급상승했고, 인기투표에서도 1등을 이어갔다.
당시만 해도 종합학원이 아직 힘을 쓸 때라 교실마다 아이들은 그득했고, 50분 수업에 10분 쉬는 시간 체제로 운영되었다. 매 수업마다 50분씩 밤 10시가 될 때까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이어 고역을 치르는 나날이었다. 어차피 50분 내내 집중하기는 글렀다 싶어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딱 절반, 25분만 바짝 집중해서 수업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놀자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한 수업에서 아이들의 눈빛은 더 반짝거렸고, 남은 25분 동안은 여러 활동을 했다. 이를 테면, 그날 수업했던 내용으로 스피드퀴즈( 2인 1조로 정해진 시간 내에 한 사람은 설명을, 다른 사람은 설명에 해당하는 어휘를 맞히는 게임-가족오락관을 아시려나요? 아신다면 옛날 사람 인증입니다 :D)를 하거나, 아이들마다 돌아가며 그날의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의 무한 질문에 대답을 해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칠판에 사람 수만큼 복잡한 사다리를 그려 각자 걸린 금액만큼 돈을 내고 모인 돈으로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와 나누어 먹기도 했다. 물론 모든 행동은 수업 시간에. 또 다른 날은 '도전! 골든벨' 게임을 하기도 했다. 손코팅지 한쪽에 A4용지를 붙여 만든 간이 칠판과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실제 골든벨 프로그램 촬영을 하는 듯 살짝 숨 막히는 긴장감까지 돌기도 했다. 가끔은 고민상담 시간도 갖고, 인기투표도 하고 아이들이 유독 피곤해하는 날에는 꿀 같은 쪽잠시간으로도 이용했다. 지루한 하루를 보내다 만난 오아시스 같았을 그 시간을 아이들은 기다렸다. 그 성원에 보답하고자 더 재미있는 게 없을까 수업준비보다 많은 시간을 쓴 날도 있었다. 아이들의 상태가 좋아질수록 내겐 주인의식이 생겨갔다. 말 그대로 내 학원인양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일인 것처럼 구석구석 정리를 하거나 필요하면 쓸기도 닦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어 무언가를 바꿔 나가기도 했다.
그런 나를 원장 부부는 '로또'라 불렀다.
로또로 산 지 2년 반이 흘렀고, 남편은 제주로 발령이 났다. 제주로 가겠다는 나를 붙잡으려 그들은 월급을 더 올려 부르기도 했고, 때마다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함께 하기를 강하게 바랐고, 제주라는 지역의 특성이 나를 남편의 부록이 되라고 부추기기도 해 결국은 학원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들도 나처럼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언제든 가능하다면 다시 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얼마만의 휴식을 즐기던 어느 날 원장은 내게 급한 연락을 했다. 나의 후임으로 온 강사가 2주 일하고는 더 못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만 남기고 연락이 안 된다며 다시 며칠만이라도 나와주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후임 강사가 적응하는 동안 전화를 통해 묻는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고 야무지게 보였고 분명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고민이 되었지만 그동안 좋은 사이로 지냈던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아 결국은 제주로 갈 날을 이틀 앞두고 다시 출근을 했다. 남편을 먼저 제주로 보내고. 헤어질 시간이 한 달 반 미뤄지는 동안 지갑도 잃어버렸었다. 가방 안에 있는 줄 알았던 지갑이 파출소에 와 있다며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고, 원내 CCTV를 확인해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 소행이었다. 과감하게 학원으로 들어와 교무실 속 내 가방 안에서 지갑을 꺼내 갔던 것이다. 지갑 안의 현금과 어쩌다 보니 가지고 있던 달러 몇 장까지 홀랑 털어가고 카드와 신분증만 들어 있는 지갑은 겁 없게도 파출소 바로 옆 건물 계단에 버리고 간 것이었다. 저런 좀도둑은 사실 못 잡는다는 말을 남기고 경찰들은 범인의 얼굴이 버젓이 나온 CCTV영상만 가지고 갔다. 그 일이 복선이었던 걸까.
진짜 헤어짐의 시간이 왔을 때,
"로또 선생님, 다시 오시면 신입보다는 좋은 조건으로 모실게요. 제주 가셔서 심심하시면 꼭 다시 오세요"
'뭐라고? 이제껏 쌓아놓은 건 다 어디 가고, 신입보다는 좋은 조건?' 의도를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기분이 상했다. 딱 잃어버렸다 돌아온 내 지갑이 된 기분이랄까.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이 유난히 힘든 나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제주에 간 뒤, 학원 내에 있던 동료의 귀띔에는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많은 월급에 제주행 티켓? 머리에 총 맞았냐? 적당히 구슬려서 데려와야지!'.
특전사를 나왔다던 대단한 덩치로 10원짜리 한 장까지 비교하며 물건을 산다는 부원장의 말을 엿들었다고 했다. 동료의 말에 화부터 나긴 했지만 전해주는 그 말을 내가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끝난 인연 그만 잊어버리자고 스스로를 달랬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러 가던 중에도 몇 번은 여자 원장에게서 돌아와 달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아닐 거야' 했던 말은 믿고 있었고 잊어버리자 달랬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지, 어느 날엔가는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지 않을 거면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 말아 달라는 회신을 보내버렸다. 좋은 관계였던 사람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고 참지 못하고 결국 터트려 버린 내가 마음에 걸려 6월의 제주 하늘처럼 한동안 모든 게 흐렸었다.
사람은 변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혹은 사회적 위치나 상황이 바뀌면. 게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내가 보아오던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쓸쓸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보고 싶은 면만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로또라 부르던 원장도, 옛 동료들도 강사의 서러움을 알기에 원장이 되면 자신은 누구보다 강사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 거라고 말하던 모습은 진짜 원장이 되고 나면 '내가 언제?' 하는 것 같았다. 퇴근 후 10대 소녀들처럼 시내를 함께 돌아다니다 치킨이나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를 떨던 한 동료도 원장이 되고 몇 년이 지나 다시 보았을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모습이 서운해 혼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마치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이 내게만 남아 있고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경험 이전의 이상과 현실을 마주했을 때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 나 또한 강사의 입장일 때는 몰랐던, 누군가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돈을 받는 입장일 때도 몇 권씩 되는 교재비를 내지 않는 학부모는 귀여운 편이고, 심한 경우엔 학원비를 몇 달씩 밀리다 몰래 이사를 가고 연락을 끊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내 경우엔 무턱대고 원비를 깎아달라 떼를 쓰는 엄마도 있었지만, 달에 3/4을 다니고도 그만둘 테니 원비의 절반을 돌려달라는 부모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진상 학부모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라도 더 냉철해지고 냉혹해지는 것 같다. (남들은 잘도 하던데 나는 글만 그렇다. 사실은 성격상 돈을 달라는 말을 잘 못한다.) 거기다 아이들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동시에 무자비 까지는 아니어도 나만의 기준이 바로 서 있어야 함도 필요하다. 이런저런 상황을 알고 난 후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래야만 했구나 하고 쓸쓸하게 느꼈던 모습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입장에 따라, 때론 상황에 맞춰 사람은 변해야 그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다. 어쩌면 변화가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 속 *자연선택설처럼 환경에 맞게 빠르게 대처하고 바로바로 옷을 갈아입는 사람이 더 많이 살아남고 더 잘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로이고 싶다. 주변의 변화에 맞춰 나 또한 변해야겠지만, 나 아닌 누군가가 나를 보며 내가 느꼈던 쓸쓸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도 그때의 내게서 느낀 좋은 감정도 여전히 그대로임을 느끼도록 나 자신은 변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있도록 더는 때 묻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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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선택설 :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는 찰스 다윈의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