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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Mar 31. 2024

내 친구 프란체스카

 한여름, 손바닥만 한 해바라기 머리핀을 꽂고 코로나도 아닌 시기에 얼굴 반을 가리는 하얀 마스크와 그보다 더 새하얀 원피스의 그녀. 평소 까만 스타일을 고수하던 그녀라 새로웠다. 아니, 사실은 머리에 꽃 달고 소복 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걸어오길래 '웬 미친?' 했었는데 내 앞에 와서 딱 멈추더니

"쌤 나 미친 여자 같지 않아?"

뜨끔. 가까이서 보니 K였다. 이 더위에 웬 마스크냐 물으니

" 화장 귀찮아서 눈썹이랑 아이라인은 문신을 했는데 이젠 립스틱도 바르기 싫으네. 그래서 입술에 장미색소 넣었지요~ 짠~"

마스크 속에는 새빨간 소시지 두 개가 코 아래 가로로 병렬연결 돼 있었다. 내 입술이 아픈 것 같은 건 왜인지.

 



  근무하던 학원에 새로 온 국어 강사였다. 눈코입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확실히 뽐내는 강한 인상, 수줍어하는 말투와 대조되는 자칭 전지현이라는 자신감, 왠지 특별해 보였다. 그녀는 다가와 우리가 친구라고 했다. 처음 본 그녀가 친구라니? 나는 이과, 자신은 문과로 고등학교 동창이란다.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나를 안다는 말에 학생 주임 선생님이 앞에 계신 듯 내 모습을 훑어보고 경찰이 내게 오는 듯 뭐 잘못한 게 있나 생각하느라 잠시 몸이 굳었다. 멈췄다 다시 흐른 시간과 함께 '이 사람 뭐지?' 외모도 행동도 특이한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그녀는 며칠 동안 꿈틀꿈틀 가둬 놓았던 본모습이 기어이 튀어나왔는지, 판다 같은 스모키 화장에 초커 목걸이, 고딕 양식의 블랙 롱 드레스를 입은 뱀파이어가 되어 나타났다. 입이 벌어진 채 정지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나 예쁘죠?"

하는 사람, 다른 이들의 시선을 즐긴다고 했다. 그녀의 핼러윈 데이는 특별할 수밖에. 큰 고깔 마녀 모자에 여전히 까만 드레스, 거기에 키보다 더 큰 빗자루와 사탕이 가득 든 호박 바구니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다 출근을 한다. 팔찌를 샀다며 자랑하느라 소매를 걷으면 툭 하고 떨어지는 주먹만 한 거미 모형, 잠시 교실을 비웠다 돌아와서 들춰본 출석부에 얌전히 앉아 있는 바퀴벌레 모형, 숙제를 안 해온 아이들에게 걷은 벌금통이라며 내 앞으로 스윽 밀어보이는 상자를 설마 하며 슬쩍 검지로 튕기듯 열어보면 역시나 손목까지 잘린 피 묻은 손이 움직이는 장난감이 들어 있다.

수업 중에 노래 부르기나 잘 나가는 아이돌 혹은 걸그룹 커버댄스로 아이들을 즐겁게도 하지만, 와중에 늘 초록테이프를 칭칭 감은 각목을 들고 다니는 특공무술 10년 수련의 특별한 캐릭터로 인근에 소문이 나기도 했다. 기존쎄(기가 엄청 세 보인다는 비속어 표현)의 그녀지만 공원을 산책하다 만나는 뱀에게 '너 여기 있으면 위험해' 하며 강아지 다루듯 풀밭으로 인도하고, 길에서 채소나 나물을 파시는 할머니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며 배고프다는 학생들에게는 떡볶이를 양껏 사 먹이는 따뜻한 사람이기도 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의 전반전과 후반전 그리고 연장전까지 관람한 듯 한 사람의 인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특별한 여러 경험과 간접적으로 마주쳤다. 어느 날은 양말 두 짝만 교실을 걸어 다닌다며 무서워 내 교실로 뛰어오기도 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분명 사람을 친 것 같아 내려서 보면 아무것도 없다고 하기도 했다. 존재하는지 모를 영적 존재를 가끔 보는 그녀 덕에 생애 처음 무속인을 함께 찾아다니기도 했고,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무속인들의 말을 의지로 이겨내겠다 애써보는 그녀 앞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보았다. 딱 맥주 한 잔 하고 퇴근하던 그녀의 남편이 어쩌다 1톤 트럭을 살짝 들이받았는데 상대 차는 멀쩡한 반면 그녀의 남편은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았지만 차는 폐차를 해야 했다거나, 100만 원을 주고 산 중고 명품 낚싯대가 처음 사용하던 날 두 동강이 나거나, 갑자기 어이없게 시부모님이 병원신세를 진다거나 하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일날 5년간의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그녀를 보는 일은 무력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한참을 울던 그날 해줄 수 있는 건 옆에서 그녀를 안아주는 것 외에 없었고, 얼마 뒤 아기를 낳은 나는 한동안 방황하는 그녀를 혼자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법학을 전공했던 철저한 문과의 그녀는 그 사이 청소라도 하겠다며 어느 수학 학원의 말단 직원이 되어 강의 과목을 수학으로 전향하는 데 결국 성공했고 그로부터 얼마 뒤엔 학원을 인수하기까지 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나오겠다는 마음 하나로 새로 태어나는 동안 겉으로는 강해지지만 속은 아플 거라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그녀는 달라져 있었다.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10년이 지나는 동안 남편에 대한 원망은 여전함에도 한 편으로는 연민의 마음으로 큰아들 보듯 용서를 하고 있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밉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밉지.. 그래도 사랑하는 걸 어떡해"

하는 그녀가 내 기준으로는 보살 같다. 해바라기는 그런 사랑을 두고 하는 말이었던가.


 지금도 그녀의 강의실 한쪽 벽에는 납작한 해골 인간 장난감이 걸려있다. 숙제를 안 해와서 벌 받느라 벽에 걸렸다가 저렇게 되었다고 아이들에게 협박하는 괴짜스러운 취향. 이젠 원장의 입장이라 학부모님들을 그 옛날의 모습으로 마주할 수는 없어 슬프다나. 그런 겉모습과는 다르게 착하고 무르던 그녀의 속은 어느새 오뚝이가 되어갔고 '언제까지나 우리는 27 짤'이라는 상큼한 마인드와 겁이 많음에도 '어~어~' 하다 보면 다 하게 된다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에, 머물러 있는 나를 반성하고 한편으론 부추겨보게 된다. 한참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만 있던 내게 늘 기다린다며 언제든 오라고 말하는 그녀처럼 누군가를 조건 없이 기다려준 적이 있었는지, 당신은 될 사람이라며 마음 가는 대로 무엇이든 해 보라는 믿음과 용기를 전한 적이 있었는지, 옆에만 있었을 뿐 마음만큼 해 준 것이 없는 내게 존재하기만 해 주어도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그녀처럼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 없이 대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도 하는 그녀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의 통화 마무리 인사는 항상 같다.

'고마워요'

나날이 발전할 그녀를 따라 나 역시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다시 언젠가 그녀에게 시련이 온다면 그땐 내가 힘이 되어주고 싶기에.




 휴일이면 늘 그렇듯 오늘도 어느 공원에서 고등과 중등의 두 아들과 함께 포켓몬 게임을 하고 있을 그녀가 행복하면 좋겠다. 시골집을 든든하게 지켜주듯 자신과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그녀의 남편에게 어디냐고 전화도 오겠지. '누렁이'





사진출처 : Unsplash & 네이버 포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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