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Apr 25. 2024

결국, 사람.

"선생님~ 우리 J가 선생님 덕분에 달라졌어요."




 J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다. 중2 여학생이지만 키도 덩치도 커서 웬만한 고등 남학생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다 복싱을 배워선지 몸도 탄탄해 남학생들도 섣불리 장난을 걸지 못했다. 그런 J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어 친해진 아름이. J는 아름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수업이 끝나면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가는 길에 아름이를 툭툭 치거나 더 놀자고 붙들거나 자기 외의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했다.


점점 힘들어하는 아름이를 지켜보다 며칠을 수업 후 J와 시간을 보냈다. J와 아름이를 분리시키고 아이와 대화를 해보려는 생각에. 그러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J의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 외동이었고 부모님은 바쁘셔서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하니 J가 안쓰러웠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늘 혼자였던 J를 바꿔보고 싶었다. 욕심이었지만.


여러 날을 단둘이 보내며 J는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아름이에게도 일방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는 조금 더 눈빛이 반짝였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조금씩 웃어 보였다. J의 엄마는 나를 찬양했고, 아이를 변화시켰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소란스러운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섰을 때,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져 아이들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남학생의 오른쪽 눈 밑이 긁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톱에 패인 자국이었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학교에서 친구랑 장난치다 그랬단다. 이제 막 난 상처라 진물이 흐르는데도 아이는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 아이를 따로 불러 물었다. J가 그랬다고 했다. 말싸움을 했고 남학생보다 덩치가 큰 J가 아이를 밀쳐 넘어뜨린 뒤 몸 위로 올라가 때리면서 낸 상처임에도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협박을 했었던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비슷한 일은 더 있었다고도 했다.


J는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게 잘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저씨 너무해요..

 

 다른 경우도 있었다. 생명이 없던 나무조각에서 목각인형이 되고 다시 사람이 되는 피노키오와는 반대로 처음엔 예의 바르고 열심히 공부했던 L. 얼굴이 익숙해질 쯤부터 나사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 인사도 하지 않고 숙제도 해오지 않고 지각까지 잦았다. 기다리다 못해 아이 엄마와 통화를 했다가 천하의 나쁜 사람이 되었다. 얼마나 깍듯하고 성실하고 예쁜 딸인데 자신의 아이를 그렇게 못되게 말하냐며, 눈을 질끈 감고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떨어뜨려야 할 만큼 화를 내셨다. 갑작스레 날벼락을 맞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학부모와 싸울 수는 없으니.


 그러고는 며칠 뒤 얼굴을 들지 못하고 쭈뼛쭈뼛, 어느 중년 여자가 학원엘 들어왔다. L의 엄마였다. 자신 앞에서도 학교 선생님 앞에서도 그런 모범생이 없었는데, 자신과 학교 선생님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욕설 속에 처박아 둔 일기를 훔쳐보고 철렁했다고 하셨다. 아이를 바르게 이끌어 주고 싶었던 나를 원망한 자신을 후회했고, 가면 속 아이를 보지 못한 부족한 엄마로 자책했다.




 가끔 셀럽들의 선행을 보면 저 모습이 과연 본모습일까 의문이 든다. 단지 만들어진 이미지에 맞추려는 노력일지 속까지 진짜일지. 만일 원하는 가면을 만들어 밤이고 낮이고 쓰고 결국은 그 가면에 맞춰 원래의 모습이 변한다면 그건 더 이상 가짜 얼굴이 아닌 게 되는 거 아닌가.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에서 소머리 탈을 쓰고 진짜 소가 되어버린 것처럼. 선행의 가장 큰 이점은 실천한 사람의 행복이라고 하니 처음에야 척이었을지언정 지내다 보니 진짜가 되는 그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은 거다. 무를 먹어버려서 소가 된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일처럼, 가끔 척을 하던 유명인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가면이었음을 들키는 일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의 끝에는 나 또한 바라는 인간상을 그려놓고 그것에 맞추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내면화되어 그와 같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기억 어딘가에 자리 잡은 많은 사람들 중 떠올리면 따뜻함, 존경스러움, 멋짐, 사랑스러움의 이름표를 붙이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그들처럼.


난, 무는 안 먹어야지!




'수업료 받고 사람을 배웠습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게으른 완벽주의자인가 봅니다.

존재하지 않는 완벽에 맞추려 생각만 하다 보니 자주 글을 쓰지 못하고 미루고 지냈어요. 멱살캐리라도 해줄까 싶어 연재북을 시작했지만, 쓸수록 어두워져 쓰기가 망설여진 날이 많았답니다.


오랜 시간 일해왔던 사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결국 남은 건 사람이었어요.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도, 사람에 의해 치유된다는 경험도, 사람을 통해 자란다는 것도 알게 되며,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를 만들어가는 시간이었지요.


부족함 많은 첫 연재북이었지만, 그럼에도 귀한 시간 내어 읽어주신 작가님, 소중한 댓글을 남겨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로 조금 부지런히 읽고 볼 생각입니다.


이전 09화 고3은 안 받습니다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