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고, 그걸 그려요'
그 첫 번째 그림이에요.
프랑스 리옹에서 약 10개월간 어학연수를 했었어요.
불어불문학과로, 나는 언어로 밥 벌어 먹고 살겠어 ! 라는 다짐치 고는
뒤늦게 넘어갔더랬죠.
3학년 2학기가 끝나고, 공항에서 인턴을 할 때였는데
외항사 터미널로 넘어가는 길에 프랑스어가 들렸어요.
문제는 그 많은 외국어 중, 지금 들리는 게 프랑스어인 줄만 알겠는 거였죠.
'아,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려면 그 나라로 가봐야겠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 듯 하지만, 그때서야 체감했고, 일종의 방아쇠가 당겨진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떠났고,
리옹카톨릭대학교 부설 기숙사에 짐을 풀었습니다.
7월 1일에 도착했어요.
여름이라 유럽의 해는 참 길더라구요.
지금보다 겁이 많을 때고, 정신적인 여유도 많이 부족했었을 때라
수업이 끝나면 장을 보고선 기숙사로 곧장 들어가는 생활이 보름 정도 이어졌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녔는데 이 날, 속이 더부룩해 기숙사 밖을 나오고 나서 알았어요.
어, 해지고 처음 나오는 것 같다.
ㅋㅋㅋㅋ
낮의 동네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 눈이 휘둥그래 졌었어요.
조명들로 가득한 도로와 건물들은 이미 이국적인 동네를 한층 더 이국적으로 보이게 했어요.
강가 주변을 걷다 용기를 내 길을 건너보기 전, 찍은 사진이었어요.
해가 졌지만 하늘보단 구름이 더 검게 드리워져 있었고,
자동차와 자전거를 탄 사람이 제 앞을 훅 - 지나갔습니다.
나는 무언가를 얻으러 - 목적성으로 - 머물게 된 도시지만
제가 떠나 온 서울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고, 일상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잠깐의 외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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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모든 걸 그려낼 생각은 없기에,
그 속에서도 제가 강조하거나 그림 속 프레임에 넣을 것을 정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사진을 응시하는데, 시선은 사진을 보지만 내가 보는 건 기억 속인 것 같아요.
기억을 응시하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꽤나 재밌더라구요.
이 첫 그림을 시작으로, 종종 같은 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렸던 이유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