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았으나 달랐다

d+18

by regine

일어나니 어깨가 너무 아팠다. 어제 짐을 옮기느라 무리한 탓이겠지.

눈이 떠진 건 열 시 즈음이었는데 곧장 보이는 하늘은 하얀색이었다. 런던의 이번 주 날씨는 오늘 빼고는 다 비가 온다 했었다.


처음으로 어딜 가볼까, 머릿속엔 테이트모던이 떠올랐지만 이 몸 상태로 그곳에 간다면 내일은 진짜로 못 일어날 것 같았다. 보고 싶었던 전시가 1월까지라 당장 급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예전엔 무료 전시만 챙겨 다녔기에 무려 18파운드나 하는 전시를 보러 갈 수 있다니.. 그때의 나야 보고 있니... 감격스럽다 정말.ㅎㅎㅎ


어제 사온 우유에 시리얼도 말아먹고, 커피랑 쥬스를 마시며 지도를 살폈다.

많이 크지 않고 가볍게 둘러볼 두 곳을 정했다.

어딜 갈지 자체를 정하는 것도 이미 성가시고 어려운 일이기에, 그곳에서 열리는 전시가 무엇인지 체크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테이트모던 제외!) 오늘 갔던 두 곳도 그랬다.


그래서 도착한 첫 번째 갤러리.

5층부터 1층까지 - 중간의 3층은 닫혀 있었다 - 모든 층에서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5층을 둘러봤다. 의류 화보 류의 상업사진과 화류계를 담은 사진. 로트렉이 카메라가 있었다면 이렇게 찍었을까?

그리고 4층.

어?

얼핏 쨍한 노란색의 벽 컬러가 보였다. 올해 봤던 전시 중 쨍한 노란색 벽으로 공간을 구성했던 곳이 한 곳 있었다. C/O Berlin.

그랬다. 그곳에서 했던 전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ㅋㅋㅋㅋㅋ

그곳에선 이 곳보다 공간을 넓게 내보였기에 노란색 벽 외에도 연녹색, 연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벽이 있었고, 작품수도 훨씬 많았었지. 신기했다. 같은 해에 다른 공간에서 봤던 전시를 다른 나라의 다른 공간에서 마주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우연히 말이다.


초입부터 찬찬히 들여다봤다.

7월에 갔던 그곳에서 봤던 사진들을 다시 보면 아직도 좋을까? 다른 느낌들이 좋게 느껴지진 않을까? 뭐 이런 생각들도 하면서 말이다.


(위에 사진은 파리의 어떤 갤러리에서도 봤었더랬다. 세 번이나 마주했는데 그게 다 다른 나라였다니.. 이거야말로 성공 오브 성공작일 텐데 작가 이름은 모르는 나..)


돌고 보니 결국 이번에도 그때 좋았던 사진만 좋았다. ㅎㅎㅎㅎ 정확히 비교하기엔 작품 수가 턱없이 적었지만 그래도 좋았었던 걸 골라내기엔 무리가 없었다.

드물게 기억에 없던 사진도 보였는데 여기서 궁금했다.


'그때도 있었는데 내가 못 봤던 건지',

아님 '독일과 영국, 베를린과 런던의 갤러리에서 각자 고른 사진이 다른 건지'.


마음에서 내린 정답은 후자로 기울었다.

같은 전시라고 해서 같은 사진을 그대로 선보이는 게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상황 같았다. 갤러리들의 성격도 다를뿐더러 이 두 국가는 매우 다르지 않은가. 전시 기획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변주를 둔 게 맞다고 믿고 싶었다. 뭐 이미 전시 공간이 많이 축소된 만큼 전시할 작품을 새롭게 추려져 있긴 했다.

내가 내린 답변을 가지고서 4층에서 1층을 다시 둘러보며 다녔더니, 이 곳에서 시간을 꽤 많이 보냈더라.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같은 내용의 전시를 하게 된다면, 시간과 장소, 혹은 국가가 달라졌을 때 약간의 변주를 두어 기획하고 구성해볼 필요도 있다는 것. 쉽진 않겠지만 반응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그렇게 하려면 애초에 전시를 기획하는 것보다 더 머리가 아플 수도 있겠다. 전시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필요하거니와 옮겨진 / 바뀐 장소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지도 미리 예측을 해내야 할 테니까. 벌써 머리가 아프다.... 근데 또 재미있을 것 같다. 전시 기획도 분명 일이 많겠고 생각할 것도 많겠는데 게다가 다른 곳에서 같은 전시를 하게 되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 또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겠지. 재밌겠다. ㅎㅎ


내가 마주했던 비슷한 것들이 뭐가 또 있을까 하다가 콘서트가 생각났다.

어떤 가수의 콘서트가 이틀 열릴 때, 양일권을 끊어 가는 지인을 알고 있다. 콘서트라는 게 자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통은 연말이나 새로운 앨범 발매 기념으로 하니까 보고 싶은 가수가 노래 부르는 걸 보기 위해 양일권도 감수하는 것이었다. 가수와 기획사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겠지. 그런 지인에게 내가 물었었더랬다.


'그래도 똑같은 거를 바로 다음날에 연달아 보는 건 아니지 않아? 두세 시간 씩이나?'

'약간씩 달라서 괜찮아'

'...?!?>!'


큰 틀에서 ‘~의 콘서트’라는 건 동일하지만 진행되는 곡 리스트나 초청 가수들을 다르게 하는 변주를 두는 거다. 그럼 양일권을 택한 사람들도 좋아하는 가수 얼굴 한 번 더 보러 오는 거지만 오늘과 내일을 각각 새롭게 즐겨볼 수 있겠고, 기획사는 양일권으로 두배의 돈을 벌고..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만큼 기획을 다르게 한다는 것에 투자를 했을 테니, 남는 게 없는 장사려나.



무튼 가볍게 보러 온 전시에서 우연을 만나 이런 생각까지 해버렸는데 전에 해본 적 없던 거라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

갤러리 일층에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었고, 지하에는 북샵이 있었는데

사진 갤러리답게 폴라로이드부터 필름 카메라, 필름까지도 팔고 있었다. 카메라로는 눈길을 두고 싶지 않아서 냉큼 북 섹션으로. ㅎㅎ

그러다 발견한 이 책 !!!!

나도 과일을 사면 거기에 붙은 작은 스티커들을 따로 떼어 카드 지갑이나 일기장에 붙이곤 했는데

그걸로 책을 낸 사람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걸로 책을 만들다니... 이런 책이 팔리나? 하면서 내가 샀지..

귤을 많이 먹었는지 한쪽 장엔 귤만 있었다. ㅋㅋㅋㅋ 하긴 귤은 개수를 여러 개 묶어 파니까.

나한테 있는 건 사과에서 뜯은 거 두 개랑 레몬에서 나온 두 개. ㅎㅎ


+

오늘 갔던 두 곳 모두 티켓 대신 스티커를 줬는데,

사진 갤러리의 것은 코트에 붙이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보니 없어져있었고..

다른 갤러리 것만 남았다. 스티커로 입장권을 대신하는 건 뮌헨의 피나코텍이 처음이었는데, 그때 그 스티커를 받고 어디다 붙일지 어리둥절하며 둘러봤던 게 불현듯 생각났다. 이런 기억력이라면 아까 그 전시도 약간의 변주를 둔 게 맞을 것 같은데...


아 그리고 이것.

갤러리나 뮤지엄에 짐을 맡길 때, 나중에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번호나 기호가 적힌 구분표를 받는데

이것도 단 한 번도 모양이나 폰트, 크기가 같은 적이 없었다.

전시 공간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볼 때 , 이런 작은 것까지도 담당하는 사람이나 부서가 있었을 거라는 게 재밌다. 며칠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든 혹은 단숨에 정해졌든, 그 결과로 나온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주머니에 찔러 넣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거나 사진을 찍게 되더라. 기억에 다 찍어둔 건 아닌 것 같아 아쉽지만, 나중에 한번 쫙 모아 봐야겠다. ㅎㅎ


전시를 보며 별 생각을 다 했던 오늘.

그래서 그런지 많이 안 걸었는데 카페는 두 번이나 갔었다. 집에서 마셨던 것 까지 하면 총 세잔을 마셨네.

내일은 물을 더 많이 마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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