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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Mar 15. 2022

나쁜 엄마 되기 준비

내려놓자, 단 당분간만

“이거 이렇게 진행해도 되겠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면 더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내가 한다고 할까? 배를 한 번 쓰다듬는다.


“네, 이견 없습니다”


평소 같으면 다른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거나, 다른 사람 일도 가져와서 하겠다고 나서겠지만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한다. 아기를 품고 있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일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으니까. 내게 주어진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까지만, 일을 더 벌리지도, 가져오지도 않기로 한다. 덕분에 회의가 빨리 끝났다.


     



워킹맘, 이제 곧 누가 내 직업을 묻는다면 답하게 될 단어. 일과 엄마의 역할 모두 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도 아마 나는 실적에 목을 매고, 고객과 네트워크를 쌓고, 마주한 업무를 해결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아기가 내 배 안에 있는 임신 기간과 태어난 후 1년 남짓의 육아휴직 기간 뿐이다. 자신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나쁜 엄마’가 될 것이고, 나의 체력과 시간은 육아와 일을 전부 해낼 만큼 충분치 않다.


그래서 임신 기간과 육아휴직 동안만이라도 아기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에 대한 욕심도, 진급에 대한 조바심도 잠시 내려놓고서 편안한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태교와 육아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임신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태교 관련 책을 구매했다. 태교에 좋은 그림이나 글이 수록된 책이 아니라 태교가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한 책이었다. 어떤 이들은 태교가 쓸모없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이는 내가 아기에게 집중할 수 있는 절반의 시간이 아기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고, 그건 너무 슬펐다. 하여 객관적으로 알고 싶었다. 정말 태교가 소용이 없는 건지.


다행히도 책에서는 태교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다. 책에서는 ‘인간은 산소로 호흡하고, 직립보행을 하는 거야!’라고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아기가 스스로 이를 아는 것은 36억 년 전부터 인류가 이룩한 진화의 결과를 태내에 있던 10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습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궁에 착상한 수정란은 며칠 지나지 않아 신경관을 만들고, 이 신경관은 뇌와 척수로 나뉘어 중추신경으로 발달한다. 신경관이 만들어진 직후부터 신경세포인 뉴런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분당 50만 개, 하루에 7억 2천만 개가 형성되며 임신 5개월에 인간이 평생 가지고 살게 되는 천억 개의 뉴런이 대부분 형성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기질과 뇌는 배 속에서 대부분 형성이 되고, 유전자 뿐만 아니라 태내 환경이 이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었다. 고마웠다. 내가 태아와 보내는 이 10개월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말해주어서.


남편과 나는 책에 쓰인 대로 개월 수에 맞춰 태교를 착착 진행해왔다. 사실 태교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태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먹지 않아야 하는건 안먹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고, 꾸준히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전부다. 잠들기 전에 책과 시를 읽어주고, 태담을 자주 나누고, 널뛰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바탕 비가 내리고 맑게 갠 오늘, 어느덧 봄이 오고 있다. 태교를 하던 10개월은 다 지나갔고 아이를 만날 날이 머지 않았다. 이제 내가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할 남은 시간은 1년 정도. 그 시간을 머뭇머뭇하며 우왕좌왕하며 보내고 싶지 않아 오늘도 나는 육아 책을 편다.


출산 과정은 어떤지, 모유수유는 어떻게 하는지, 잠은 어떻게 재우는지, 울면 달래는 방법, 목욕시키는 방법, 개월 별 발달 정도, 예방접종 일정까지. 매일 책을 읽고, 검색하고, 영상을 보고, 노트에 적어 퇴근한 남편에게 줄줄 읊어주며 복습을 한다.


아무리 공부해도 분명 수없이 헤매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 한정된 시간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기에.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훗날 아이가 아프거나 엇나갔을 때, 하염없이 후회하고 반성할 나에게 빠져나갈 조금의 변명거리는 만들어주고 싶은 나의 이기심 때문이다.

     



아가야, 나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가 얼마나 부족한 엄마가 될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충분한 사랑을 주고 싶지만, 네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만큼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엄마는 너도 사랑하지만, 엄마 자신도 많이 사랑하거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


희망하건대, 내가 너와 오롯이 보낸 이 시간과 이 기록이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전해줄 수 있기를, 너 또한 엄마가 너로 인하지 않고 엄마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주기를. 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함께 또 각자 행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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