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생일
얼마 전 기사를 봤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입학을 앞둔 지적 장애아를 기초수급자인 엄마가 살해했다는 기사였다.
아이의 엄마는 출동한 경찰에게 자신이 아이를 죽였다고 순순히 자백했다고 한다. 아이와 엄마가 살던 집은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집이었으나 건축대장물에는 보일러실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2022년 2월의 어느 아침, 우리집 아침상은 푸짐했다. 엄마가 돼지갈비, 조기, 파전, 잡채를 해서 식탁에 올렸고,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미역을 불리고 나름대로 산 한우로 미역국을 끓였다. 식탁의 가운데에는 주인공용 노란색 테이블 매트를 깔고 그 위에는 오빠가 좋아하는 햄과 참치 통조림, 김도 올려 두었다.
고깔모자를 쓴 오빠가 노란 테이블 매트 자리에 앉고, 오빠 앞에는 전날 사다 둔 아이스크림케이크를 두었다. 성냥불로 숫자에 불을 붙이자 여섯 명이 동시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 생일 축하~ 합니다~"
오빠는 불을 끄고 일어나 나를 꼭 안아주면서 그 특유의 로보트 같으면서도 엉성한 말투로 고맙다고 말했다. 나도 고맙다고 답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엄마와 동생과 앉아 두런두런 어렸을 적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오빠를 서울로 데리고 다니며 특수 교육을 시켰던 이야기, 나쁜 사람들이 오빠를 끌고 가서 추운 겨울에 물을 끼얹어 괴롭혔던 이야기,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갔던 오빠를 엄마가 맨발로 잡으러 나갔던 이야기,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가 매일 울며 집에 있는 벽을 다 부숴버렸고, 그 벽을 아빠가 덤덤하게 고쳤다는 이야기.
쉽지 않은 삶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그리고 오빠 스스로에게.
다른 이의 불행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은 정말이지 볼품없는 일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오빠의 생일에 입학식을 앞두고 죽은 장애아와 그 아이를 살해한 엄마를 떠올리며 우리 가족이 오빠의 서른세 번째 생일도 어김없이 축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음을 고백한다.
엄마 아빠가 오빠의 양육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마음을 모아서 오빠를 잃을 여러 번의 위기들을 잘 넘겼기 때문에, 오빠의 탄생을 불행이 아닌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오빠의 생일을 올해도 축하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생일은 매년 여러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것이 당연한 날일 수 있지만, 어떤 가족에게는 그 평범한 날을 매년 축복하고 기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 라는 것.
내가 처음 글쓰기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홉 살 무렵 서랍장 속에 고이 숨은 엄마의 육아일기를 발견했을 때부터였다. 그 오랜 기억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엄마가 적어 내려간 줄글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엄마의 기록은 아기의 성장에 대한 행복한 기록이 앞부분을 채우다가 점점 물음표가 많아졌다.
‘아기가 나와 눈을 맞추지 않는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걸까? 있다면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아기에게 장애가 있다고 했다. 나는 정말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장애이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출산예정일을 20여 일 앞둔 오늘에도 나는 엄마가 첫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 날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해야 하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란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 글을 쓰고 있던 불안에 떨고 있을 그 시절 어린 어미를 꼭 끌어안고 당신은 그 모진 삶을 멋지게 살아냈으며 당신의 아들은 서른세 번째 생일을 무탈히 맞이했고, 당신의 딸이 곧 손주를 안겨드릴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기!”
오빠는 내가 배를 보여주면 항상 배꼽을 만지려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빠가 곧 외삼촌이 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고 홍성에 있는 외삼촌 얘기를 하더니, 몇 번 반복해 말해주니 자기가 외삼촌이라고 말했다. 오빠는 이렇게 아직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다른 삼촌들처럼 선물을 사주거나, 목마를 태워주거나, 축구나 야구를 함께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오빠는 아이에게 분명 좋은 삼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장애가 있는 당신의 동생으로 자라 사회의 불평등을 이해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목마름으로 자라났던 것처럼, 오빠의 조카인 우리 아이도 분명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아가야, 애석하게도 모든 탄생이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환영받지 못한 생의 탄생마저도 존엄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엄마는 간절히 기도해. 그리고 그 앎에 엄마의 오빠가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혹여 만약 너의 삶에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엄마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너도 절대 네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는 엄마를 보며 그렇게 배워왔으므로. 또한 너의 탄생 자체가 이미 충분히 찬란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