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만에 아이를 낳다니
그렇게 자정부터 시작된 깊은 통증은 8분, 7분, 6분 단위로 나를 조여왔다. 규칙성이 생긴다는 것은 곧 진통의 시간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나는 야멸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초침을 막고 싶을 만큼 시간이 흐르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진통의 지속 시간은 그래봤자 1분이었고, 다섯 번의 긴 호흡을 하면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들이쉰 숨을 다 뱉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분만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남편이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
"산모를 바꿔 달래"
"산모님, 많이 아프세요? 주기가 5분 안으로 들어 와야지 자궁문이 좀 열린 거 거든요. 지금 주기 5분인가요? 아니면 오셔서 돌아가셔야 할 수도 있어요"
또 그놈의 5분 타령이었다. 내 주기는 6분과 5분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좀 더 버티다가 갈게요"
"네, 오실 때 전화 또 주세요"
그렇게 두 시간이 흘러 새벽 두 시, 집안에 하이든 현악 4중주 '종달새'가 연주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 위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종달새가 아닌 다른 짐승의 소리였다.
"으아어어어어"
터져 나오는 소리를 참고 숨을 내쉬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주기를 잴 정신이 없어 남편이 대신 체크를 하고 있었고, 5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자"
남편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걸어서 차로 향하는 와중에도 성실하게 찾아오는 진통을 맞이해야만 했다. 차 뒷자리에 누웠고, 남편은 시동을 걸었다. 병원까지는 약 20분. 그동안 나 혼자 감내해야 할 진통은 4회.
차 안에서 다시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점점 회음부 쪽으로 압박이 느껴지고 있었고, 아래쪽으로 힘이 들어갔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힘을 주자 통증이 완화됐다.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래로 힘을 주고 있었다.
도착한 병원, 진눈깨비가 나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찾아온 진통에 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서서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주저앉고 싶었다. 만일 이 고통이 내가 지금부터 느낄 고통의 서막이라면 자연분만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제발... 무통 주사“
간신히 엘리베이터에 오른 나는 무통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마치 무통 주사라는 미지의 신을 섬기는 맹목적인 종교인이 된 것 처럼. 출산까지 열려야 하는 자궁문은 10cm, 무통 주사를 맞으려면 4cm는 열려야 했다. 나는 적어도 3cm의 천국의 문이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도착한 분만실 앞, 다시 또 찾아온 진통에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대기석의 의자를 부여잡고 다시 또 1분을 기다리며 아래로 힘을 줬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분만실 안 기괴하게 생긴 의자에 앉아 드디어 내진을 받았다.
‘이렇게 버티다가 왔는데 4cm는 열렸겠지? 제발 무통 주사’
아뿔싸 간호사의 대답은 내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산모님! 아이고 이걸 어떻게 다 버텼어요. 자궁문 다 열렸어요. 아기 곧 나올 것 같은데... 분만 바로 준비할게요."
"네? 그럼 무통 못 맞는 건가요?"
"아휴 지금 무통을 어떻게 맞아요. 무통 주사 맞는새 애기 나와요"
분만실이 분주해졌다. 팔에는 링겔 주사가 배에는 아기를 모니터링하는 여러 선들이 붙여졌다. 별안간 나타난 하늘색 포가 배 아래로 덮어졌다. 여러 명의 간호사들이 방을 드나들더니 곧 의사도 도착했다. 그 와중에 진통도 계속 찾아오고 있었다. 간호사가 배를 만져보더니 아래로 힘을 줘보라고 했고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힘을 지그시 아래로 줬다.
"잘하시네. 그렇게 하시면 돼요. 다음 진통이 오면 다리를 이렇게 붙잡으시고 아래로 힘을 길게 주시는 거예요. 아시겠죠?"
대관절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간호사 한 분이 코로나 신속 항원 검사를 위해 내 코를 쑤시고 계셨다. 망할 코로나 같으니라고.
"남편분 들어오시라고 해"
분만실 밖 대기석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들어왔다. 상황을 전달받지 못했던 남편은 그제서야 출산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진통이 시작됐다.
"산모님, 지금 힘주세요. 더더더. 길게"
힘을 줬다. 지금부터 긴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기에 젖 먹던 힘까지는 아니고 되는 데까지 힘을 줬다.
"아, 아기 보이는데. 이거를 넘어와야 하는데"
"엥?"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힘을 줬다. 길게 호흡을 들이마셨다가 숨을 꾹 참고서 아래로, 아래로 힘을 줬다. 뜨거운 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 느껴지자 곧 하얀 속싸개에 싸인 아기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내 품 안에 들어왔다.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버님, 탯줄 자르세요."
가위를 든 남편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저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있기를 바라고 왔던 병원이었는데 탯줄을 자르고 있다니. 아기를 안은 나와 탯줄을 자른 남편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를 만난 기쁨과 어처구니없는 나의 인내심에 우리는 그저 함께 웃었다.
아가야, 너를 기다리던 열 달이 흘러 이렇게 너와 나는 만났다. 소인국 행성에서 막 도착한 것 같은 네가 외딴 행성이 아닌 내 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실 지금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너를 보면서도 너의 존재가 믿기지 않을 만큼 너는 신비롭다.
너를 낳고 엄마는 ‘복이 많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전염병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도 무탈히 너를 낳을 수 있었던 것도 복이었고, 출산의 진통을 스스로 온전히 참을 수 있었던 것도, 진통의 시간이 짧았던 것도 복이었다.
급속 분만임에도 너는 다친 곳 없이 건강했고, 엄마의 회음부 상처도 준수했다. 임신 기간 고생한 자궁과 방광도 출산일부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심지어는 산후조리원에 없던 방이 마침 딱 생겼다고도 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내가 너를 보며 매일 느끼는 행복이 복의 작은 단위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엄마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앞으로 너와 걸어갈 길에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그 이야기들 속에는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분명 있겠지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너는 그 이야기의 끝에서 함께 웃게 될거야. 네가 태어나던 그 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