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풍경
2022년 3월 17일, 최저 기온 6도, 최고 기온 16도. 날씨 흐림. 밤 늦게 비 소식 있음.
바로 전날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가 60만 명을 넘어섰다. 살짝 감소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40만 명이 신규로 확진됐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산부는 출산 시 일반 병원에서는 출산하지 못하고, 특수 병동이 있는 곳에 입원해 출산해야 한다. 그것도 혼자서. 병원은 병상이 있는 곳에 무작위로 배정되기 때문에 경남 창원의 한 산모는 출산을 위해 헬기를 타고 제주도의 병원으로 갔다고 하고, 어떤 이는 멀디먼 병원으로 이송되다가 구급차에서 출산을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절대 조국 수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연설을 했다. 미국 의회는 그의 강한 의지에 기립박수를 보냈고,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전범으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에 추가 무기 지원을 약속했다.
대선은 끝났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 인선을 마치기도 했다.
“여보 잠깐 와봐!”
그날 우리집의 아침은 내 다급한 목소리로 시작됐다. 부름을 듣고 남편은 내가 있는 화장실로 왔고 나는 속옷에 묻은 피를 보여줬다. 속옷의 절반 정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이슬인가?”
아직 출산예정일이 2주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지금 나와도 전혀 이상없는 주수기도 했다. 매일 같이 떨리는 마음으로 진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슬이 먼저 비치다니!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산모님, 이슬 같기는 한데 혹시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내원해보셔요”
병원에 들러 검진을 받았다. 이슬이기는 하나 자궁문도 열리지 않았고, 초산모는 이슬이 비친 후 출산까지 2~3일이 소요되므로 출산까지는 시간이 좀 더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분 간격으로 1분 동안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고통으로 느껴지면 진통이니 그 때 다시 내원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분만까지 보통 8~12시간이 소요되니 급하게 올 필요도 없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를 만날 설렘과 다가올 진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떨려왔다. 간헐적으로 자궁이 수축하면서 배가 아파 왔지만 견딜만한 수준이었고, 규칙성이 없었다. 이 통증이 점차 심해지고 규칙적으로 변하면 아기가 나온다는 신호일 것이었다.
“죄송한데 예약 좀 취소하려고요”
이슬이 비친 다음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고, 당분간은 오붓하게 기념하지 못할 것 같아 63빌딩 고층에 위치한 경치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두었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부랴부랴 예약을 취소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오후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나는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남편이 해야 하는 일들을 메모장에 정리했다. 정리 후에는 오전에 하지 못한 요가를 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쓴 ‘파시즘’이란 책을 마저 읽었다. 이따금 생리통처럼 복통이 있었지만 참을만했다.
그래도 결혼기념일은 챙겨야 하지 않겠냐며 남편이 케이크를 하나 사왔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커플 세트 메뉴를 배달 주문했다. 케이크에 숫자 4 모양의 촛불을 꽂고 불을 붙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서로를 다독이고는 식사를 하는 와중에 두세 번의 날카로운 고통이 찾아왔으나 이 역시 참을만 했다.
“왠지 오늘 새벽에 나올 거 같아”
선생님은 이틀이 걸릴 것이라 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아기를 만날 시간을 목도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은 다음날 잡혀있던 회의를 취소하고, 출산이 임박했음을 팀 사람들에게 알렸다. 곧이어 나는 샤워를 했고, 샤워 도중에 통증이 있었지만 뜨거운 물을 허리에 쐬면 참을 수 있었다.
도대체 선생님이 말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이란 것이 궁금해지던 그날 자정, 나는 드디어 전보다 더 강하고 빠른 주기로 찾아오는 배를 쥐어짜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고통 또한 나는 감내할 수 있었다는 것. 남편은 불안한 눈빛으로 허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연신 마사지를 했다.
"병원에 갈까?"
남편의 물음에 역시나 나의 대답은
"참을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