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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Mar 16. 2022

조금 바보 같아도 그렇게 살기로 했다

이사와 돈

결혼을 앞두고 첫 살림을 합칠 곳을 마련하던 2017년 12월, 남편과 나는 집을 찾아다녔다. 당시 우리는 주말 부부였고, 한 사람이라도 회사 근처에 사는 것이 맞다는 남편의 강력한 뜻에 따라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로 알아봤다.


문제는 회사가 서울에서도 비싼 땅 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었고,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때의 우리에게 아파트는 언감생심이었다. 빌라에서 시작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동네를 정했다. 회사에서 가깝고, 조용하고, 근처에 걷기 좋은 공원이나 산책로가 있는 동네. 그렇게 양재천을 낀 서울 개포동에 우리는 첫 터를 잡았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우리집은 리모델링을 마치고 첫 입주를 하는 것이었기에 깨끗하고, 아늑하고, 세련됐었다. 건물의 꼭대기 층인데 지붕까지 천장을 확장해서 천고가 높아 확 트인 느낌을 주는 것과 조금만 걸으면 사계절이 아름다운 양재천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이 우리집의 자랑거리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숱한 아침을 맞이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책을 읽고, 몇 번이고 얘기한 추억들을 곱씹고, 함께 울고 웃었으며, 아기를 가졌다. 우리의 찬란했던 신혼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고마운 집이었다.

양재천


그 고마움이 후회로 변했던 것은 재작년 집값이 폭등하면서부터였다.


“우리가 집을 못 사면 도대체 누가 사는 거야?”     


부부 동반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는 가족이 있다. 우리는 금수저들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고,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넷 중 집 한 채 있는 사람이 없었다.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그저 돈을 조금 더 모아 살고 싶은 곳에 집을 마련하자는 것이 우리 넷의 생각이었는데 그 사이 집값은 ‘조금 더 모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가 결혼할 때쯤 집을 샀던 다른 부부들은 어느새 자산가가 되어 있었고,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 바보들로 전락해버렸다.


자산 증식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보다 바보가 된 그 느낌이 더 싫었다. 주변에서는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며 능력이 있는데 왜 망설이냐고 더 바보 취급을 했고, 천고가 높은 집에 우리는 덩그러니 앉아 지금 당장 융통이 가능한 자산과 부채를 따져보고 있었다.


“근데 우리 돈이 왜 이거밖에 없지?”


결혼 후 4년 동안 회사에서 받은 봉급은 생각보다 많았고, 우리가 모은 돈은 기대보다 적었다. 침대에 누워 결혼하고 나서 찍은 사진들을 쭉 함께 훑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돈을 못 모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스쿠버다이빙과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몰디브나 하와이 같은 유명 여행지들은 물론이고, 말라파스쿠아, 모알보알처럼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오지까지 바다가 부르는 날이면 달려갔다. 먼 길을 매주 오가는 남편의 안전을 위해 차도 바꿨고, 기부도 꾸준히 해왔다. 그래, 부부 동반으로 대학원도 다녔지 참.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모으지 못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왜였을까? 더 빨리 정신 차리지 못한 스스로와 상대에 대한 원망과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주변인들의 성화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 우리 세 가족의 첫 번째 가족회의를 개최합니다! 모두 모이세요!”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 꼭대기를 오르내리는 것이 퍽 버거워졌던 임신 5개월 무렵, 우리는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만삭까지는 어떻게 버틴다고 하더라도 아기를 낳고서는 힘들 것 같았다. 아기와 유모차를 등에 지고 낑낑대며 가파른 계단들을 오르내릴 자신도 없었고, 아기 물건들을 들여놓을 공간도 부족했다.


가족회의에 앞서 나는 회사에서 사업성 검토한 경험을 살려 추후 20년 동안의  예상 수입과 지출을 나열하고, 자산 투자금을 분배한 후 보수적인 기대수익률을 곱해 대략적인 가계 로드맵을 세웠다. 그리고 가족회의에서 남편과 정합성을 더해 실질적인 내집마련 목표 시점을 잡았다.


“허리띠 졸라매면 4년 후엔 해볼만 하겠어”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기분이 들자 후회와 원망이 사그라들었다. 주변의 부추김에도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가족회의를 마치고 TV를 틀어 바닷속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함께 봤다.


온 바다를 뒤덮은 형형색색의 산호와 무리를 지었다 흩어지는 수십만 마리의 정어리 떼 , 손톱보다도 작은 해마와 우리보다 큰 꼬리가 긴 상어를 마주했던 순간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때 그 시절 바다를 누비던 우리의 자유와 젊음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피그미 해마


우리는 미래의 자본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삶을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지금은 경기도의 한 전세 아파트에서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거실에는 커다란 책장을 두어 서재를 만들어 두었고, 방 하나는 연노란색으로 도배를 하고 아기용 가구들과 물건들을 들여놓았다. 조금만 걸으면 천변이 있고, 결혼 후 처음 갖게 된 베란다에는 초록색 식물들을 가득 채워놓았다.


우리 부부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우리만의 속도로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생각이다.      



아가야, 네가 처음 나고 자란 이 집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단다. 너는 이 집을 기억할까? 아빠는 이 집을 계약하고서 우리 세 가족이 처음 함께 살 집이라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었어. 누가 보면 내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인 줄 알았을거야. 너를 맞이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금전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보금자리를 옮길 정도로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이사를 하면서 느낀 것처럼 돈은 아주 중요한 것이란다. 돈으로 너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고,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엄마 아빠는 부단히 노력하겠지. 하지만 분명 세상에는 돈보다도 중요한 것들이 있고,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이 말이 요즘은 그 의미를 잃고 순진하다는 조롱을 받지만 말이야.


우리는 너에게 그 가치를 가르치면서 살 생각이다.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지나치지 말고, 사랑과 우정을 따져 재지 말고, 너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우리 가족은 조금 바보 같아도 그렇게 살기로 했다.


이의가 있다면 가족회의에서 제기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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