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이가기전에 Apr 14. 2022

벚꽃이 아니라 벚나무니까

멋쟁이 토마토는 가고

그간 매일 같이 올리던 글이 뜸해진 것은 짐작했겠지만 육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그냥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노동 시간과 창의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더 고찰해보고 싶지만 말했다시피 그럴 시간은 없으니 이만하기로 한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지 2주 차, 남편의 헌신적인 지원 아래 모유 수유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아기는 그새 많이 자랐고, 나도 가슴을 드러내놓고 사는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내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나는야 주스 될 거야. 꼴깍. 나는야 케첩 될 거야. 찍. 나는야 춤을 출 거야.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젖을 먹다 잠이 든 아기를 깨워 다시 젖을 먹이기 위해 버튼을 누르면 동요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튤립 모양의 장난감을 손에 들었다. ‘멋쟁이 토마토’라는 낯선 동요가 흘러나왔다. 나 어렸을 적에는 없던 동요 같은데 역시 요즘은 자기 PR이 중요한 시대구나.


“사실 엄마가 멋쟁이 토마토였는데...”


자는 아이한테 괜스레 한탄의 말을 건넸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여기저기 뽐내고 다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임신 기간 동안 차오른 배와 출산 후에는 언제라도 내어놓아야 하는 젖가슴으로 패션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나와 멋쟁이 토마토 시절의 나는 이승과 저승의 사이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멋쟁이 토마토 시절, 와이키키 해변


매해 결혼기념일마다 나는 멋진 옷을 입고 남편과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는 했다. 아기가 태어난 올해 결혼기념일에도 만삭의 몸이었지만 멋지게 차려입고 싶었던 나는 무려 해외직구로 옷을 하나 주문했다. 넥라인이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적당히 파이고 불룩 나온 배를 덮을 수 있는 늘어나는 재질의 빨간 원피스였다.


이슬이 비쳐 레스토랑 예약을 취소하고 집에서 진통을 기다리면서도 나는 그 옷을 꺼내 입고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커진 배 때문에 무릎 아래까지 와야 하는 기장이 짧게 올라와 어중간했고, 허리선 없이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라인과 퍼진 가슴이 마냥 어색했다. 이 정도면 만삭 임산부치고는 제법 예쁘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보듬었지만, 오갈데 없는 심란한 마음이 거울에 갇혀있었다.




“옷을 갈아입는게 어때?”     


산후관리사 선생님이 막 수유를 마친 나를 보고 말했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새어 나온 젖이 여기저기 묻어 옷이 얼룩덜룩했다.


“그래야겠죠?”


옷방으로 들어와 같은 디자인의 색만 다른 수유용 티셔츠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새벽 수유 때문에 짙어진 다크서클하며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머리까지. 뽐내기 좋아하는 멋쟁이 토마토는 없고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 한 명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지금껏 스스로 내 몸을 사랑한다고 생각해 왔건만, 사실 내가 사랑한 것은 몸이 아닌 예쁜 몸이었던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드는 요즘 나름대로 몇 가지 규칙을 정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더라도 아침 수유를 하기 전에는 잠옷을 벗고 생활복으로 갈아 입는 것, 스트레칭을 하며 불편한 부위를 알아차리는 것, 짧게라도 산책을 하는 것,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이상 듣는 것, 샤워를 하고 정성스럽게 바디로션을 바르며 몸을 어루만지는 것.


이 작은 시간들이 차곡차곡 모여 나를 지켜내고 있다.




아가야, 바깥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어제 내린 비로 져버리고 말았다. 분분한 낙화를 보며 아쉽기 보다는 내년에는 너와 함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어느새 나도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고 있구나 싶다.


우리가 내년에 피는 벚꽃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은 벚꽃이 한 해만 살고 죽어버리는 꽃이 아니라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무더운 여름과 살이 애이는 겨울을 버텨내는 나무이기 때문이란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은 여자를 보고 꽃이 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엄마는 지고 피는 꽃이 아니라 매해 자라나는 나무이기에 한철 떨어져 내리는 꽃잎은 아무렴 두려워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멋쟁이 토마토 시절을 애써 붙잡기 보다는 이제 너에게 물려주고 나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보려 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다우니까.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몸은 지고 있지만, 매년 더 아름답게 피어날 엄마의 모습을 기대해주렴.

이전 16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