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세대를 초월한 연대
시어머니가 다시 제주로 돌아갔다. 3주 동안 꼬박 나와 아기를 돌봐주는 것을 마무리하고 귀갓길에 오른 어머님의 뒷모습에는 아쉬움과 개운함이 혼재했다. 이제 가면 백일 잔치에나 잠깐 볼 수 있는 손주와 혼자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살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며느리가 눈에 밟히는 모양이었다.
시어머니는 결혼 전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주시의 KAL 호텔에서 근무했었다. 중매로 만난 남자와 석 달 만에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서귀포로 내려왔다. 어머님의 시댁은 제사를 비롯한 집안 행사가 많은 집이었고, 며느리는 어머님 하나였다.
첫째를 막 가졌을 무렵 집안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셨고, 오일장을 치르게 되었다. 당시 제주는 장례 동안 매일 아침 돼지를 잡는 전통이 있었고, 돼지를 잡고 나서 컨테이너에 남은 핏자국을 어머님은 걸레로 다 닦아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 머리에 이고 동네에 한 대밖에 없는 탈수기가 있는 집으로 가 탈수를 하고 먼 길을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병원에 가보지 못해 임신을 확신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에게 임신을 알릴 수도 없었고, 알렸다 해도 일이 줄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저 남편에게 열이 난다는 말을 전했고, 남편은 속도 모른 채 감기약을 사왔더랬다. 나름 스윗했다만 임신을 짐작한 어머님은 몰래 약을 버렸다.
시어머니가 오기 전에는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주었다. 아이 셋을 기른 실력은 녹슬지 않고 엄마의 얇아진 팔목에 남아있었다.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작은 나의 아기를 들어 안고는 눈물을 보였다. 손주를 안아보니 감동이 밀려왔다나.
엄마도 결혼 전에는 서울의 나름 잘나가는 대기업에 근무했었다. 아빠와 결혼해 시골로 내려와 오빠와 나, 동생을 낳았다. 엄마는 수년간 시집살이를 했다. 장애가 있는 오빠 손을 잡고, 낯을 심하게 가렸던 나를 등에 업고 매일 시부모의 밥을 했다. 1년 열두달 있는 제사도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그뿐이랴 특수 학급이 있는 초등학교로 오빠를 전학시키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길을 걸어...... 아 그만. 엄마가 고생한 얘기는 그만 쓰고 싶다. 너무 슬퍼서.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없었던 엄마는 시부모와 아빠에게 우리를 맡기고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는데, 머리를 반쯤 잘랐을 무렵 아빠가 애들을 못 보겠다며 미용실에 찾아왔다고 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직접 집에서 머리를 잘랐다. 명동 거리를 쏘다니던 멋쟁이는 삐뚤삐뚤한 머리로 양손에는 아이 둘을 등에는 막내를 업고 시골길을 걸었다.
“너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마!”
어릴적 손을 보태겠다고 괜히 부엌을 어슬렁거릴 때면 엄마는 나를 내쫓았다. 딸이 욕심을 채우고 넘칠 만큼 공부하기를, 스스로 돈을 벌기를, 돈 때문에 부엌 한편에서 눈물 쏟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살림에 재주가 없는 까닭은 다 엄마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 탓의 절반은 내 며느리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시어머니의 몫이다.
두 여자는 자신의 딸에게는, 며느리에게는 당신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걷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우리집 현관에 들어섰다. 당신은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지 못했지만, 당신은 잘 다니던 회사를 결혼과 함께 그만둬야 했지만, 임신 중에도 쉬지 못하고 출산 후에도 제대로 자기 몸을 돌보지 못했지만, 한평생 남편과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세월을 보냈지만, 나의 딸은, 나의 며느리는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이것이 두 여자가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방법이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고 규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특성은 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보부아르가 쓴 글에 따르면 여성들의 모성은 지극히 동물적인 특성으로 치부되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권리를 박해하는 데 사용된 논거 중 하나였다고 한다. 모성은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고, 고등 교육을 받고, 사회로 진출하는데 방해물로 작용했다.
우리가 흔히 떠오르는 모성의 이미지는 갓 태어난 새끼를 사자가 탐할 때,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사자에게 덤비는 성난 어미 초식 동물의 모습이다. 하지만 두 엄마들의 모성은 단순히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곤두선 동물적 본성이 아닌 자신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자식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일종의 태제이며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연대다.
“그래도 엄마의 엄마나 할머니 보다는 나은 삶이었지”
엄마의 삶을 위로했을 때, 엄마는 그래도 그 전의 여자들보다는 나은 삶이었다고 말했다.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이 오래 전부터 축적된 모성이 발현된 증거인 셈이다.
아가야, 네가 세상에 나온 지 일흔 하고 나흘 밤이 지난 오늘, 이제 너는 내가 너의 어미임을 알아챈 것 같다. 오수에 든 네가 느닷없이 깨면서 울면 나는 다가가 너의 옆에 내가 있음을 말로 어르고는 살짝 손을 너의 가슴 위에 둔다. 그럼 너는 안심했는지 다시 금방 잠에 든다.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온전한 안심과 위로가 되다니. 이기적인 내게 과분하리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경험을 너는 선사하고 있다.
나는 매일 너를 먹이고, 재우고, 씻긴다. 너는 나 없이는 어느 것 하나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작디 작은 인간이고, 나는 지금 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겠지. 나는 너 외에도 세상에 수많은 것들에 기뻐하고 슬퍼하지만, 너는 오직 나를 보며 그 감정들을 느끼고 이해하고 있다. 나는 너의 전부다. 하지만 네가 더 자라면 엄마가 전부인 삶에서 벗어나고, 반대로 나는 너를 잃고는 생을 지속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지.
너를 보며 아빠는 덧없는 인간의 인생을 위로받는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반대로 너 때문에 인생이 얼마나 짧고 유한한지에 대해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언제 죽는다 해도 후회없이 살겠다며 오직 나를 위해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었는데, 이제 나는 그 어떤 것을 이룬다 해도 너를 두고 가기에 아쉬움으로 가득한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다.
아직 나는 모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너를 지키고 싶은 마음, 네 곁을 떠나기 싫은 마음, 너의 작은 칭얼거림에도 한달음에 달려가는 마음, 너의 울음에 왠지 모르게 자책하게 되는 마음. 이 마음들의 총체가 모성이라는 것일까?
나는 너에게 어떤 것을 남겨주고, 어떤 것에서 해방해주고 싶은지 정하지 못했다. 살다 보면,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네가 더 자라면, 나의 엄마들처럼 나의 모성도 다른 차원으로 변화, 아니 좀 더 고차원으로 승화할까?
그냥 지금은 내 물려받은 이 모든 사랑을 너에게 주련다. 남김없이, 또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