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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Jul 05. 2022

식은 밥을 먹어본 적이 있었나?

엄마가 되고서야

밥솥에 보온 처리되고 있는 밥을 한 그릇 푸고, 미리 해둔 국을 데웠다. 냉장고에 엄마가 만들어주고 간 밑반찬들을 꺼내다가 왠지 계란말이가 먹고 싶어져 달걀 몇 개를 꺼냈다. 갑자기 없던 요리 욕심이 생겨 햄, 애호박, 파프리카도 꺼내 잘게 다져 풀어 놓은 달걀물에 넣었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달걀물을 붓고서는 뒤적거려 계란말이를 완성했다.


따뜻한 밥, 국, 계란말이. 나름 육아하는 사람치고는 잘 차려 먹는 밥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숟갈쯤 먹었을까? 안방에서부터 들려오는 아기의 작은 음성. 시계를 보니 아기 젖 줄 시간이 다 됐다. 서투른 요리 솜씨로 재료를 다듬고 불을 쓰는 동안 시간이 꽤나 흘러버렸다.


“응! 엄마 갈게”


계란말이 한 조각을 입에 욱여넣고는 잽싸게 일어나 아기한테 간다. 아기는 잠에서 깨어 아기새 마냥 입을 뻐끔거리고 있다. 귀여운 녀석. 얼른 속옷을 내리자 아기는 젖무덤으로 얼굴을 들이밀고는 바삐 젖을 찾아 먹는다. 심한 사출에 사레에 걸려 가면서도 꿋꿋이 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그저 예쁘고 기특하다.


젖을 다 먹이고 트림까지 시키니 30분 정도 흘렀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거실 매트에 뉘인 후 모빌을 튼다. 아기는 눈을 반짝이면서 머리 위로 돌아가는 인형들을 본다.


“엄마 밥 마저 먹고 올게. 이거 보고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고~”


아기는 필요한 것이 있거나 불편한 것이 있으면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앉는다. 이미 식어버린 밥, 국, 계란말이. 차가워진 음식들을 억지로 입에 넣는다. 먹어야 또 아기 줄 젖을 만들 수 있으니.




백일이 갓 지난 나의 아기는 꽤나 시간표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먹고, 놀고, 자고, 이른바 먹놀잠 교육을 열심히 했고, 아기는 잘 따라주었다. 아기도 나도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일상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때문에 밥을 굶는 일은 거의 없다. 끼니를 건너뛴다면 밥을 차리기 싫은 나의 귀찮음 또는 새벽에 잠을 설쳐 밥보다 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은 밥, 불은 면을 먹는 일은 다반사. 아기가 엄마를 찾는 때는 정해져 있지 않기에.


식은 국을 먹으며 생각한다.


‘내가 다 식어버린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던가?’


학창 시절, 밥을 굶으면 자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던 우리 엄마는 중학교 때까지 매일 아침저녁을 해 먹였고, 점심은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을 먹었다. 누가 식판을 뺏어서 던지지 않고서야 급식이 식을 일은 없었다. 고등학교는 기숙학교였고, 급식실 어머님들은 성실하게 하루 세끼를 내어주셨다. 식은 국이나 밥을 내어주시진 않았지.


대학교 때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오후에 일어나 해장하러 가서는 속이 안 좋아 밥을 채 못 먹고 온 적은 있다만 식은 음식을 먹을 일은 없었다. 처음부터 차가운 회나 과일화채 안주가 아니고서야.


‘어쩌면 회사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 사회는 냉혹하니까’


근데 없다. 도통 생각해봐도 없다. 갑자기 보고서를 만들어야 해서 밥을 건너뛰거나, 아예 늦게 먹거나,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먹고 자리로 복귀한 적은 있어도 식은 밥을 먹은 적은 없다. 그 냉혹한 사회도 밥 먹을 시간 정도는 주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자기 입에 식량을 공급하는 것을 무지 중요한 일로 보기 때문에 이보다 시급한 일이 밥 먹는 도중에 일어나지 않는 이상 식은 밥을 먹을 일이 없다.


예를 들어 경찰관이나 소방관, 의사, 간호사가 밥을 먹다 말고 비상 상황이 생겨 뛰쳐나갈 때 (노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밥을 먹다 말고 급똥이 마려울 때…. 그러니까 밥을 먹다가 말고 타인 또는 본인의 존엄에 해를 입힐 만한 일이 없다면 다 식은 밥을 먹을 일은 없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식어버린 밥을 먹어본다. 엄마가 되어서야 내 밥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생긴 것이다.




“세상에 애 굶기면서 자기 밥 먹는 엄마가 어딨어?”     


밥 먹다 말고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나자 남편은 마저 먹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체 없이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젓가락질을 못 하는 오빠 옆에 앉아 오빠가 밥을 한 숟갈 뜨면 그 위에 반찬을 올렸다.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오빠는 밥알을 줄줄 흘렸고, 엄마는 그걸 옆으로 치우며 반찬을 계속 올렸다. 설상가상으로 막내는 편식이 심해 잘 먹지를 않았고, 엄마는 오빠가 밥을 뜨는 그 잠깐 사이에 막내 숟가락을 들고 입에 밥을 넣어줬다.


그 난장판 속에서 나는 밥을 천천히 먹고 일어나 학교 갈 채비를 했다. 교복을 다 입고 나면 그제서야 식탁에 앉았던 엄마는 또 현관까지 나와 나를 배웅해줬다.


“밥이나 먹지 뭘 나와. 다 식었겠다. 다녀올게”


“괜찮아. 엄마는 식은 밥 좋아해”


식은 밥을 먹어보니 알겠다. 식은 밥과 국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다는 것을. 이걸 좋아했을 리가 만무하잖아. 나는 정말 엄마가 뜨거운 것을 못 먹는 줄만 알고 산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아가야, 네가 태어난 지 백일이 조금 넘었다. 요즘은 엄마를 향해 방긋방긋 잘도 웃어 보이고, 옹알이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뒤집기도 맹연습 중이다만 백일의 기적이라고 불릴만한 일은 벌이지 않았다. 너는 본디 순해서 잘 울지 않았고, 잠도 잘 자왔기 때문이야. 너는 태어남과 동시에 조금씩 꾸준히 기적을 행해왔다.


엄마는 종종 젖을 먹는 네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앞으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 배가 고픈 너를 가슴 앞에 놓이면 너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스스로 젖을 찾는다. 이거다 싶은 지점에 너는 바삐 입을 가져다 대고 숨을 쉴 수 있는 구석도 찾아낸다.


젖꽃판에 입을 붙이고는 진공 상태로 만들고 열심히 젖을 빤다. 내용물이 줄줄 흐르는 젖병과 달리 엄마 젖은 꼭 네가 스스로 입을 열심히 움직이지 않으면 도통 먹을 수가 없으니 열심히도 입을 움직인다.


네가 빠는 것보다 젖이 콸콸 나오기도, 오래 나오기도 하는데 그럼 너는 혼자서 완급 조절을 하며 기다렸다가 먹기도 하고, 캑캑거리며 젖을 뱉어내기도 한다. 그러고는 다시 물고 주린 배를 채운다. 사레에 걸린 후에는 다시 먹기를 주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젖을 빤다.또 다시 사레에 걸릴까 하는 두려움을 뒤로 한채.


용감하게.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젖 먹기는 쉽지 않았지만 너는 네 앞에 놓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백일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 젖을 먹었다. 가끔은 먹다가 힘들다고 칭얼대기도 하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네가 젖을 먹다 우는 모습을 보면 엄마는 마치 네가


“엄마,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들 일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 세상사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 너는 그것을 이리 어렸을 때 깨우쳤고, 극복해왔으니 앞으로 네 앞에 놓일 모든 먹고 사는 일에서 너는 잘 해낼 거다. 분명 그럴 거다.


차갑게 식은 밥처럼 이 글도 쓰는 내내 너의 호출에 식고 데우기를 반복했다. 식은 밥을 먹어 치우는 것 만큼이나 식은 글을 적어 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먼 훗날 너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 글을 끝까지 마무리해 본다.


너는 뭐든 잘 해낼 수 있다. 엄마가 다 봤어. 정말로.


그래서 처음부터 차가운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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