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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Apr 29. 2022

네 아빠가 내 남편이라니

아기를 낳는다고 더 행복해지나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새벽 5시에 아기의 칭얼거림을 시작으로 일어나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을 연이어 물린 후 역류방지 쿠션 위에서 새근거리며 잠이 든 아기 옆에 쪼그리고 누워 쪽잠을 잔다.


다시 아기의 칭얼거림을 듣고 눈을 뜨고 습관처럼 기저귀를 확인한다. 똥을 쌌다. 바로 갈아주지 않고 다시 쿠션 위에 뉘이고 눈을 마주치며 놀아준다. 똥 위에 앉아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편안하고 귀여운 얼굴. 앗, 방귀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한번 더 쌀 줄 알았지!


혹시 추가로 눌 수도 있으니 좀 더 기다리다가 아기가 팔다리를 휘적이는 속도가 빨라지면 안아 들고서 화장실로 향한다. 엉덩이를 닦아준 후 기저귀를 갈아주니 또 젖을 찾는다. 그래 이렇게 많이 쌌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하지.


티셔츠를 들어 올리고 밥을 찾아 바삐 헤매는 아기 입에 젖을 물려준다. 아이고. 누가 보면 이틀은 굶은 줄 알겠네. 그렇게 먹으면 엄마 아동 학대로 의심받을지도 몰라! 말을 알아듣는 건지 젖을 먹다 말고 씨익 웃는다. 귀여운 녀석.




엄마 인생 42일 차. 아기는 먹고 트림하는 일 아니면 당최 잘 울지 않는 순한 성격이다. 이제 밤낮도 제법 구분하는지 밤에는 4~5시간을 내리 자서 새벽에 한 번만 수유하면 깊게 잘 수 있다. 그마저도 유축을 해두고 자면 남편이 일어나 먹이기에 나는 푹 잘 수 있다. 대신 남편은 늦은 아침까지 잔다. 의도치 않았지만 새벽과 아침 수유 당번이 정해졌고 꽤나 잘 돌아가고 있다.


처음 아기와 조리원에서 돌아왔을 때는 아기를 어떻게 재우는지도 몰라서 항상 젖을 물리다가 잠들기를 기다리고는 했고, 아기가 울 때면 이유를 알지 못해 그저 젖을 물려 다시 재우기를 반복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불규칙한 수유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신경이 곤두섰고, 그런 내 옆에서 젖 없는 남편은 눈치를 보며 집안일을 했다. 내게도, 남편에게도, 아기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주 시작된 2주라는 짧은 남편의 출산 휴가 동안 우리 셋은 꼭 달라붙어 지내며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예방접종을 하고, 젖을 먹이고, 울음을 달래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우리 밥을 차려 먹다 보면 어느덧 새벽은 밤이 되어있다.


이제 남편과 나는 아기의 울음을 듣고 무엇이 아기를 힘들게 하는지 얼추 알아차릴 수 있게 됐고, 덕분에 수유를 아기가 배고픈 시간에 제대로 할 수 있어 수유 간격이 벌어졌다. 이제 옆에서 아기를 재우고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짧은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잃어버린 일상의 패턴을 점점 찾아가고 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남편이 일어나 아침을 차릴 예정이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만큼 솜씨도 빼어난 남편은 내게 매일 먹고 싶은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


휴가 동안 어떤 날은 연어 필렛을 통째로 사서 연어 초밥과 아부리 사케동을, 또 다른 날에는 굴림만두를, 오리주물럭을, 봉골레 파스타를, 우육탕면을 내왔다. 새조개를 한 접시 사 와서 샤브샤브를 해먹기도 했다. 임신 때와 마찬가지로 수유부에게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고른 남편의 메뉴들이다.


빨래며 청소며 음식까지 온 집안일을 도맡아 해 주면서 아기가 울면 달래 재우는 일까지 하는 남편 덕분에 나는 모유수유에만 전념할 수 있다. 제때 잘 먹은 아기는 잘 싸고, 잘 잘 수 있고, 우리는 요즘 들어 자주 해맑게 웃는 아기를 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남편의 지극한 정성이 행복하게 아이를 길러내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들은 육아가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하는 바이지만 나는 남편이 함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함께 해주어 고맙다고, 애썼다고 말하고, 힘들지 않은지 묻는다. 내가 엄마로서 나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듯, 남편의 노고도 당연히 당연하지 않다.     




남편은 아기가 추울까 봐 다음날 아침의 기온을 확인하고 입힐 잠옷을 결정하고, 엉덩이를 닦아줄 때는 미리 물을 틀어놓고 물 온도를 맞춘 후에야 아기를 화장실로 데려간다. 나보다 먼저 아기가 보내는 배고픈 신호를 알아차리고, 발이 차갑다며 발싸개를 얼른 신기고, 틈틈이 아기 머리를 빗질해준다.


그 사려 깊은 마음 씀씀이가, 자상한 보살핌이 내게 보였던 모습과 닮아 있어서 나는 기분 좋은 기시감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남편을 가만히 본다.




“그래도 아기 낳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지 않아?”


점심을 먹으며 남편이 물었다.


“글쎄. 그냥 차원이 다른 행복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차원이 다르게 더 행복하다 이런 거 말고 그냥 정말 두 행복의 차원이 다르니까 비교가 불가능한 느낌?”


퇴근하고 오랜 술친구인 남편과 마주 앉아 진탕 취할 때까지 마시면서 느끼는 행복과 하루 온종일 함께 기른 아이가 방긋 웃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행복을 비교할 수 있을까? 그 모양도 색깔도 다른데. 마치 면적이 같은 동그라미와 네모를 두고 무엇이 더 크냐고 묻는 것 같다.


새벽녘 젖을 배불리 먹고 짓는 아기의 미소를 보는 것이, 그 작은 손을 잡고 함께 눈을 맞추는 것이, 목 깊숙이 코를 박고서 아기 냄새를 맡는 것이, 뒤통수에 입을 대고서 얇은 머리카락을 느끼는 것이, 아기와 남편이 함께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남편의 품에 폭 안기는 것이, 밤마다 누워 힘들다고 칭얼거리는 것이, 요리하는 남편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돕는 것이, 남편의 맨 어깨를 장난스럽게 깨무는 것이, 함께 식탁에 앉아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이제 보니 아기와 함께하는 삶이 행복한 것은 내가 아기와 함께하지 않은 삶도 행복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아기를 낳는다고 지금까지의 불행도 행복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그 행복의 양상이 조금 달라질 뿐




“내가 그 집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엄마의 친한 언니가 출산을 앞둔 우리에게 건넸던 말이야. 우리 부부에게서 태어나 자랄 네가 부럽다고 하더라구. 사실 나도 네가 부럽다. 네 아빠가 내 남편이라니. 얼마나 좋을까?


아빠의 출산 휴가가 어쩌면 네 인생에서 아빠와 함께 보내는 가장 긴 시간일지도 몰라. 2주라는 시간을 내리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우리 셋이 함께 보낼 날이 또 있을까?


아빠는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면 저녁에 잠깐 너를 보게 될 거고, 엄마도 복직을 한 후에는 너를 새벽부터 밤까지 끌어안고 살지 못할 거야. 너도 점점 자라면서 너만의 일과가 생겨나고, 친구들이 더 중요해지는 날을 맞이하겠지? 방문을 쾅 닫으면서


“엄마 아빠가 나에 대해 뭘 알아요?”


라고 소리도 지르고.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보낸 2주가 눈물이 나도록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네.


너는 눈 깜빡하면 더 자라 있는데, 엄마 아빠가 놓칠 순간들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시간은 배려 없이 흐르고 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나겠지. 그러니까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고 즐겁게 보내보자 우리.


오늘 글은 이만 줄인다. 네가 젖을 찾고 있거든.


알았어! 준다고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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