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라는 말은 넣어두기
“아가, 눈 좀 떠봐. 조금만 더 먹어봐. 엄마는 스몰 석세스가 필요하단 말이야”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그러했다. 엄청난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실력을 쌓고 원하는 것을 성취해 왔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고자 하면 이룰 수 있었다. 쉽게 포기하지도 않았다. 이제까지 경험한 작은 성공들로 말미암아 나는 결국 잘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마음 저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새벽,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젖으로 땡땡 부은 가슴을 들이밀며 나는 사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유 수유도 결국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를 위해서는 한 번 한 번의 수유에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이에게 말하고 있는 나였다.
출산 후 바로 다음 날부터 가슴은 뜨거운 돌처럼 단단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열감은 온몸으로 퍼져나가 오한에 시달렸고,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새벽을 지새웠다.
“산모님, 젖몸살 맞네요. 유선이 굉장히 풍부하고 길어요”
병원에서 산후조리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산후조리원에는 산모들의 가슴을 집중하여 관리해주는 ‘모유원장님’이 별도로 있었다. 유선은 모유를 만들어 내는 젖샘인데, 내가 고통받는 이유는 유선이 열심히 젖을 만들었으나 이를 아이에게 먹이지 못해 안에 젖이 고여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가슴 안에서 염증이 생겨 통증이 더 심해지고, 낫는 방법은 아이가 생성된 젖을 먹어주는 수 밖에는 없다고 했다.
애초에 모유 수유를 하려 했던 나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으로 아기와 계속 함께 지내며 가슴을 비우겠다고 조리원에 선언했다. 모유 수유를 장려하는 곳이기에 내 뜻을 크게 반기며 아이를 방으로 데려다줬다.
아, 혹여 모유를 수유하는 것이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해다. 사실 그래야 마땅하지만, 젖병이 발명된 후부터 인류의 모유 수유는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엄마의 젖을 빠는 것보다 젖병을 빠는 것이 훨씬 쉽고, 갓 태어난 작은 인간들은 우리처럼 간사해서 젖병을 무는 순간부터 엄마 젖을 거부하려 한다.
최근에는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를 신생아실에 맡기고 엄마가 몸을 회복하기 때문에 이미 아기는 젖병에 길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직접 수유를 거부해 모유 수유를 포기하는 엄마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6개월 완전모유수유율은 2018년 기준 15%가 채 되지 않으며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고.
모유 수유가 아기의 건강과 정신 발달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유 수유를 하면 출산 준비물이 확 줄어들었다. 분유, 분유제조기, 젖병, 젖병건조대, 젖병소독기, 젖병전용솔까지 뭐 이리 구비 물품이 많은지, 외출할 때는 짐이 한 보따리라고 했다. 나는 완전모유수유를 무조건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분유와 관련된 물품은 일절 사지 않았다. 젖몸살로 시름시름 앓았지만 그만큼 모유량이 많다는 것은 희소식이라고 생각해 그 조그만 인간에게 하루에 열두 번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데리고 앉아 젖을 먹였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육체는 나의 젖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잘 먹다가도 힘들어 울었고, 울다 지쳐 잠들었다. 아기가 먹다 남은 젖은 내 옷을 다 적시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온통 얼룩이 졌고, 나는 욱신욱신한 가슴을 부여잡고 아기한테 이렇게까지 젖을 물리는 것이 옳은지, 왜 나는 천국이라는 조리원을 즐기지도 못하고 이러고 앉았는지 한탄하며 울었다.
“원장님, 저희 애가 먹는 걸 힘들어하는데 괜찮은 건가요?”
“차트 봤는데, 아기가 너무 잘해주고 있던데요? 원래 아기들은 네 번 먹였을 때, 한 번만 잘해도 잘한다고 하는데, 산모님 아기는 그렇게 자주 먹이는데도 한두 번 빼고는 다 성공했던데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아기와 모유 수유를 시작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그새 아기는 몸무게가 늘었고, 젖을 빠는 힘도 세졌다. 잘 먹어준 덕분에 가슴 통증도 많이 좋아졌고, 젖량도 아기의 먹는 양과 점점 맞춰지고 있다. - 인체의 신비: 모유는 아기가 먹는 양만큼 채워지기 때문에 계속 직접 수유를 하면 양이 맞춰진다고 한다.
여전히 아기는 젖을 물기 전에 울고, 먹으면서도 울고, 먹고 나서도 운다. 아기가 울 때면 나는 차분히 달래주고 젖을 다시 물려보다가 계속 울어 재끼면 직접 수유를 포기하고 젖병에 분유나 유축해 둔 모유를 먹이기도 한다. 아기에게 수유 시간을 나쁜 기억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에.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내가 모유 수유를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이의 건강이나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모유 수유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나만은 기필코 해내겠다는 이상한 승부욕에 불탔고, 그 승부욕을 충분히 잘하고 있는 아기한테까지 강요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기와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이라는 수유의 본질은 잊어버린채.
아가야, 네가 태어나 일주일 동안 열심히 노력해준 덕분에 엄마의 울혈은 많이 좋아졌단다. 또 엄마는 너와 떨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지낸 덕분에 네 기분이나 표정을 이제 얼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네가 울 때는 너를 잘 안지도 못해서 혼비백산해 땀을 줄줄 흘리던 나였는데, 지금은 차분하게 너를 지켜보면서 어디가 불편한지 생각하고 해결 방법을 찾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첫 일주일은 이미 스몰 석세스를 넘어 빅 석세스를 이룬 셈이다.
너와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며 엄마는 다짐한 것이 있다. 너를 키우는데 ‘절대’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한 것. 절대 분유를 주지 않는 것, 절대 젖병을 물리지 않는 것, 절대 네 울음과 타협하지 않는 것은 결코 너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는 깨달았다. 앞으로는 그냥 적당히 대충 즐기면서 수유를 해볼 생각이다.
모유 수유는 우리가 함께 보낼 일생의 아주 짧은 기간의 가장 작은 갈등일 테다. 앞으로 네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다양하고 깊은 갈등들을 마주할 텐데 그때 엄마가 네게 ‘절대’를 요구한다면 너는 엇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모님은 집에 가시면 수유 충분히 잘하실 수 있을거에요. 아기가 너무 잘해주고 있거든요”
조리원 원장님도, 선생님들도 모두 네가 너무 잘 해내고 있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훗날 너에 대한 욕심으로 내가 조바심을 내고 있을 때, 이 기억을 되짚으며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태어났을 때부터 그래왔다고 나 스스로를 타이르고 싶구나.
그리고 오늘도 바닥에 널부러지고 싶을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낸 내게도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엄마는 오늘도 네 덕분에 한 뼘 자랐다. 자! 이제 또 밥을 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