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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habgirl Mar 31. 2024

누구나 자기 삶의 이야기가 있다.

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5

20대부터 50대까지의 폭넓은 연령대의 발달장애인 분들과 부모와의 사별준비, 나의 홀로서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에서 '웰다잉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어르신의 죽음준비교육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주제로 '내 삶 회고하기'가 있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그들이,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용서와 화해도 하고, 아직 못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내용이다.  

아직 노년기는 아니지만 발달장애인들과의 교육에서도 이 부분을 다루어보았다.

물론 회고보다는 과거의 내 삶을 돌아보고, 미래의 내 삶을 그려보는 형식이었다.

'행복한 죽음 웰다잉연구소'에서 제공해 주신 활동지를 이용해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 맞춰 나만의 색으로 칠하고 그림도 그리고 스티커도 붙여가며 표현해 보았다.

6명의 다양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장애인들은 자기 삶의 에피소드, 행복했던 순간, 슬펐던 기억을 말할 기회가 많다. 들어주는 사람도 많다. 발달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자기 삶을 표현할 기회가 부족하다. 능력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기회가 부족하단 말이 맞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라-라는 훈계를 듣는 시간이 많은 게 그들의 삶이니까.

그림을 하나씩 펼쳐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아: 색칠한 나이 중에서 어떤 때가 가장 좋은 거 같아요?

A참여자: 네 번째 그림이요. 저 때가 제일 행복하고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여행도 많이 다녔고요

영아: 정말 그런 거 같은데요? 옷을 주황색과 파란색으로 칠한 게 엄청 힙해요!


영아: 00 씨는 색칠을 다 안 하고 두 번째에만 칠했네요? 그리고 자기가 직접 그림을 그렸어요. 다른 나이에는 칠하지 않은 이유가 뭐예요?

B참여자: 저 나이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어요.

영아: 왜요?

B참여자: 중학교 3학년 때 특수학급에서 정보화대회를 나가서 은상을 받았어요. 그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영아: 그때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어요?

B참여자: 네 맞아요.


*B참여자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으로 나와는 3년 여 째 수업으로 만나는 사이이다. 이 분은 장애특성상 매우 경직되어 있고 질문과 무관한 답변을 할 때가 많았는데, 이 시간에 유독 자기 과거이야기와 생각을 잘 표현해 주어 연신 깜짝 놀라게 했다.


영아: 00 씨는 색을 굉장히 화려하게 표현했어요. 엄청 멋지네요?

C참여자: 저는 세련되고 멋있는 게 좋아요.

영아: 아하 정말요? 그럼 지금 색칠한 나이 중에 언제가 가장 세련된 나이였던 거 같아요?

C참여자: 네 번째 칸이요. 20대 때가 가장 세련되고 제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던 거 같아요


영아: 00 씨가 색칠한 나이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요. 두 번째와 네 번째에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주신 부분인데요. 어떤 의미가 있어요?

D참여자: 어릴 때 노란색 예쁜 핀을 꽂고 싶었어요.

영아: 그럼 지금이라도 하면 되죠^^

D참여자: 지금은 이제 나이가 있어서 못하죠ㅎㅎ (이 분은 52세 셨다..)

영아: 네 번째 그림에 스타킹을 노랗게 표현하신 것도 엄청 멋져요.

D참여자: 저 나이로 돌아가면 저렇게 멋있게 입고 싶어서요.


과거를 회상하며, B참여자가 한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특수학급 선생님한테 꼭 말해주고 격려해주고 싶어요. 저한테 잘해주고 상 받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요"


교육생들 중에 오늘 처음 만나는 분도 2분이 있긴 했지만, 4분은 3년여간 꾸준히 만나왔던 분들이다.

수업이란 시간 속에 강사와 교육생으로 만난 우리는 정작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처음이었다. 3년 내내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해라- 이런 교육적인 이야기만 나누던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서로의 과거와 미래를 나눌 수 있었다.

아빠를 잃고 똥색, 회색으로 칠해버리고 싶은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처음이었고,

어릴 적 노란 꽃핀을 꽂고 싶은 소망을 가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이야기가 있다.

발달장애가 있다고 해서 그들의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어봐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게 미안하면서도 그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나누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기로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닫혀있던 것을 열게 하는 힘이 있음을 배워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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