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6
푸바오가 떠났다.
무진동 차량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갔다.
나는 푸바오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동물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데다, 청소년기 때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사라진 뒤로 동물을 좋아하는 게 조금 두려워진 탓도 있다.
그런 내가 푸바오가 떠난 날을 알고, 그 과정까지 소상히 알게 된 데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지윤(실명은 아니다^^)의 영향이 컸다.
지윤과 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총 25년을 친구로 지내는 사실상 가족 같은 사이이다. 같은 장애인복지 일을 하고 있기에 업무적인 고민도 1번으로 나누는 찐 베프다. 서로 모르는 거 없이 오히려 가족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까.
지윤을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이적을 좋아해. 나 별밤 공개방송 신청에 엽서 보내서 추첨돼서 이적도 보고 왔어!"
엄청나게 자랑을 해댔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적에 관심이 없었...........ㅎㅎ)
그 뒤로 25년 간 지윤이는 무언가에 한 번 꽂히면 무섭도록 빠져들곤 했다.
한 동안은 장근석, 그 뒤에는 태양의 후예 송중기, 그 뒤에는 지금 키우는 강아지 흰둥이(얘도 실명은 아니다^^), 가장 최근이 바로 푸바오였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대놓고 본인한테 말도 했다.
"또 시작이냐...."
카톡에 지윤이 이름이 뜨고 '사진' 또는 '유튜브 링크' 메시지가 보이면
'이거 백퍼 푸바오다!'라고 생각하고 열어보면 정말 푸바오였고, 하루종일 신이 나서 푸바오 소식을 퍼다 나르기 바빴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새벽같이 에버랜드에 달려가 5분만 보고와도 행복하다 말하던 내 친구 지윤.
그러던 지윤은 최근 한 달여 전부터는 푸바오 얘기를 하며 극도로 우울해했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내가 푸바오가 가면 살 수 있을까?' '나 돈 모아서 중국에 푸바오 보러 갈 거야' '나 푸바오가 가는 것도 이러는데 나중에 흰둥이 죽으면 살 수 있을까?' '푸바오랑 같이 산 것도 아닌데 난 대체 왜 이럴까? 이 나이 먹고.. 이러는 내가 나도 이해가 안 된다ㅜ'
울기도 했고 속상함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난 지윤의 그런 마음이 이해됐기에 네가 그러는 게 이해된다고 말해주었다. 진심이었으니까.
"너 정말 내가 이러는 게 이해되? 사람들이 다 나한테 뭘 그렇게까지 속상해하냐고 뭐라고 해.."
주변에서 하도 뭐라 하는 통에 푸바오와 헤어지는 것을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했다.
일주일 전,
발달장애인들에게 사별준비교육을 해주는 자리에 지윤은 나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웰다잉 강사인 강원남 소장님도 함께했다. 자연스레 지윤은 푸바오가 떠나는 과정에서 오는 우울감, 앞으로 다가올 흰둥이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해 소장님에게 상담하듯 이야기했다.
소장님 왈.
"이별과 작별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뭔데요?"
"이별은 일방적으로 준비 없이 헤어지는 거고, 작별은 상대가 준비할 수 있도록 헤어짐을 전하는 거예요"
"아.. 그런 차이가 있었군요"
"지윤선생님. 푸바오와 이별하지 말고 작별하세요. 힘들면 힘든 걸 그대로 표현하고 혼자만의 의식도 치르면서 작별하셔야 해요. 푸바오가 떠난 길을 따라가 본다든가, 에버랜드에 다시 가보는 것도 괜찮아요. 그런 식으로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게 좋아요. 그러면 나중에 흰둥이와의 작별도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날 우리는 5시간 여를 함께 보내고 헤어졌다. 그때, 소장님의 인사말
"잘 작별하세요"
푸바오가 떠나던 날 강릉에 있던 지윤은 내게 카톡으로 하루종일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프고 눈이 퉁퉁 부었다며 계속 소식을 전했고, 나는 지윤에게 계속 너의 상실감이 충분히 이해되니 속상함을 계속 말하라 했다. 그리고 절대 이별이 아닌 작별이 될 수 있도록 푸바오를 잘 보내주자 했다.
나중에 다가올 흰둥이와의 작별을 연습하려고 푸바오가 너에게 다가온 거 같다는 말도 보탰다.
45년을 살면서 난 이별과 작별이 다른 의미란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결국 내가 발달장애인들에게 사별교육을 한다는 건 이별을 작별로 만들어주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 날이었다. 누구에게나 헤어짐은 아픈 일이다. 식물살인마라 키우는 족족 식물을 다 죽이면서도, 죽어가는 식물을 보는 게 속상해서 어떻게든 살려보려 늘 애쓰는 게 나다. 그 또한 내겐 헤어짐이고 아픔이니까.
누구에게나 헤어짐은, 특히나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은 아프고 슬플 수밖에 없다. 그 아픔이 이별이 아닌 작별이 될 수 있도록 함께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글을 끄적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