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habgirl Mar 31. 2024

무게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

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4

발달장애인 화가 박미정 님의 그림 

며칠 전, 

발달장애인 사별과 죽음교육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관계자들은 얼마나, 어떻게 인식하고 준비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조금 충동적으로 설문지를 후다닥 만들었고, 장애인복지 현장에 있는 동료들을 통해 구글 설문지를 배부했다. 현장 실무자들과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가족들이 설문 대상이었다. 

설문내용은, 발달장애인의 사별/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만약 교육이 있다면 어떤 형태와 내용으로 구성되면 좋겠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설문구성 자체가 실무자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다소 소극적으로 진행한 설문이었기에 내 주변 현장동료들 중심으로 50명 내외가 답변할 거란 생각으로 가볍게 진행했다. 

결과는 내 예상에서 철저히 빗나갔다. 

설문은 23시간 만에 마무리되었고, 예상인원을 초과한 142명이 참여해 주셨다. 그리고 대부분의 응답자는 실무자가 아닌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형제/자매/남매 그리고 부모들이었다. 

아직 정확한 통계수치를 내거나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답변을 대충 훑어보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많았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실무자들의 답변은, 이런 교육을 생각해 본 적이 잘 없다. 인식자체가 부족했다. 교육을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하되 웰다잉 전문가가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반면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답변은 오랜 시간 사별준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장애인복지 실무자가 이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당사자의 가족과 실무자들 사이에도 이에 대한 논의나 대화가 부족했음이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특히 형제/자매/남매들이 서술형으로 작성해 준 내용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걸 말하고 싶어도 말로 꺼내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발달장애인 형제/자매/남매를 챙기는 몫은 그들의 역할이기에 남겨진 자에게 주어지는 무게는 적잖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업무현장의 사례만 봐도 남겨진 형제들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부모님이 유산을 많이 남겨놓고 가시면 많아서 문제, 없으면 또 없어서 문제. 비장애 형제/자매가 결혼을 했으면 해서 문제, 안 했으면 또 안 해서 문제. 발달장애 형제가 일을 하면 해서 문제, 안 하면 또 안 해서 문제. 상황에서 오는 여러 변수들이 얽히고설켜 어떤 값을 투입해도 그 산출값은 형제자매의 몫으로 돌아가는 구조였다.  

특히나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경우 남겨진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잃은 데서 오는 슬픔에 더해 장애가 있는 자녀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중의 힘듦을 경험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 끝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도전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준비나 예고 없이 거주시설로 입소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현장에서 꽤 많이 목격하면서도 나조차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미안하단 말, 도움이 못돼 죄송하단 말이 전부였다.

1개월여 전 발달장애인의 사별교육 준비를 위해 장애인복지 현장에 근무하면서, 발달장애인 형제를 두고 있는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15년 근무한 경력자라 잔뼈가 굵은 사회복지사였고, 현재 결혼 후 출가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발달장애인 동생만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나중에 엄마가 없으면 나 스스로도 힘들 거 같은데, 내가 남은 동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상상도 안되고 걱정도 많이 돼요. 
저는 장애인복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버거운데, 솔직히 같이 살아도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잘 없는 형제자매들도 많거든요. 그들이 발달장애인 형제들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아직은 저도 겪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동생이 자기의 유일한 양육자가 없어졌을 때 공포감을 확 느낄 텐데 내가 그 감정까지 보듬어줄 수 있을지...
 저도 엄마를 잃은 상실감이 클 거잖아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준비해줘야 할 거 같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말로는 '얘도 감정이 있는 아이야'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감정을 읽어주고 준비하게 해주는 건 어려워하세요. 그럴 여유도 없으신 거 같고요.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일이었어요. 동생이 자기도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가고 싶다 말했는데, 못 가게 했거든요. 동생은 배제된 상황에서 오는 불안을 많이 느꼈어요. 동생이 불안할 때 하는 특유의 행동이 있는데 강하게 표출됐거든요. 제가 보기에 보통 가족을 잃으면 처음에는 불안을 느끼고 그 뒤에 슬픔을 느끼는데, 제 동생은 불안을 크게 느끼고 바로 스트레스로 넘어가는 것 같았어요. 자기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게 잘 안되니 그런 거겠죠? 적어도 엄마와 헤어지기 전에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계실 자리도 미리 정해놓고, 동생과 미리 가보기도 하면서 '나중에 여기 오면 엄마, 아빠를 언제든 만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경험은 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동생이 불안함을 덜 느낄 거 같아요. 



그에게 가족이 아닌 종사자로서는 어떤 생각이 드는 지를 물어보았다. 


작년에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자폐성장애인분이 계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어요. 전혀요. 그런데 생전 없던 도전적 행동이 나타났어요. 여자직원만 골라서 괴롭힌다던가, 갑자기 센터를 나가 배회한다던가 이런 행동들이 생긴 거죠. 하루에 15킬로씩 혼자 막 걸어 다니고 길을 잃고 했어요. 불안한데 자기 마음이 뭔지는 모르겠고, 갑자기 엄마는 사라졌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옆에서 보기에 마음을 읽어주고 토닥여주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아버지도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셨고, 저는 또 저대로 봐야 하는 장애인 분들이 많으니 그 마음을 읽어줄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발달장애인의 가족이자 장애인복지 실무자라는 이중의 관계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았다.

발달장애인들이 가족과의 사별을 경험할 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 절대적으로 큰 거 같아요. 사실 가족들은 현실적인 준비를 하기도 버겁기 때문에, 애도와 같은 정서적 지원은 현장 실무자들이 해주는 게 맞다고 봐요. 그나마 부모와의 사별을 잘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잘 사는 사람들은 충분히 상담해 주고 괜찮아 슬프면 슬프다고 표현해도 돼.라는 말을 꾸준히 들은 사람들이었어요. 감정을 읽어주고 돌봐주는 것이 극복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던 거죠. 

설문을 마치고,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화두가 하나 더 늘어났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남아있는 가족들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지원과 장치에 대한 고민이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이 무게를 덜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종이 한 장만큼의 무게라도 나누고 싶다.

이전 03화 그들이 삶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