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habgirl Apr 14. 2024

여기에 오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

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7

봄이다. 

봄도 이젠 얼추 끝자락인 듯하다. 

봄이 오면 전 국민들이 들썩들썩 벚꽃놀이를 즐기기 바쁘다. 카톡에 있는 수 백명의 친구들 프로필만 봐도 1/3이 벚꽃인 걸 보면 말이다. 

봄이 오면 봄을 느끼러 벚꽃나들이를 가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느끼러 바다로 계곡으로 간다. 가을이면 가을을 느끼려 단풍구경을 가고, 겨울이면 겨울을 느끼려 눈꽃축제나 스키장을 가곤 한다. 

계절이란 건 꼭 그곳에 가서 무언가를 보고 즐기지 않아도 내 곁에도 있는 건데 우리는 왜 굳이 특정한 곳에 가서 느끼려 할까. '그곳'이 주는 강력한 상징성 때문이다. 


요즘 다양한 곳에서 웰다잉 수업을 받고 있는데, 한 곳에서 언니와 사별한 수강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이제 50대 초반이셨는데, 20대 중반에 갑작스레 언니를 잃었다 했다. 부모 곁을 떠나 직장인인 언니와 둘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바다로 여행을 간 언니가 그만 바닷물에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했다. 20 대란 나이에 너무나 갑자기 떠난 언니.. 언니는 마치 떠날 준비를 미리 한 것처럼 옷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고, 심지어 컴퓨터에도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했단다. 놀라울 정도로.. 

20대의 한창 예쁜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부모님께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셨다 한다. 그래서 곱게 화장을 해 산 꼭대기에 유골을 뿌리고 별도의 납골당이나 수목장은 하지 않았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어린 딸이 어딘가에 가루가 되어서라도 남아있는 걸 감당할 수 없어 이런 선택을 하셨다 한다. 

이 분은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언니에 대해 말하는 게 가슴이 아프다 하셨다. 자신도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당시 부모님이 그 아픔을 어찌 견디셨을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했다. 그런 그녀가 부모님을 원망하는 일이 가지 있었다. 


"납골당이라도 하나 해주지.. 그게 너무 원망스러워요. 가끔 언니가 보고 싶으면 가서 사진이라도 보고 올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곳이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해요. 언니가 없다는 사실보다 언니가 그리울 때 가서 보고 얘기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게 허무해요"


사람은 인지하고 인식하기보다 '감각' 하는 존재라 한다. 납골당에 간다고 거기 언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언니를 상징하는 그곳에 가면 언니를 느낄 수 있기에 언니를 충분히 애도하고, 가족의 상실감도 표현할 수 있었을 테다. 봄은 늘 내 곁에 있지만, 흐드러진 벚꽃길을 가면 봄을 더 명확히 느끼듯이 말이다.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남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떤 상징을 통해 나를 애도하게 될까? 난 내가 미리 주도적으로 준비해 놓고 가고 싶다. (다만, 아직 아무 준비는 하지 못했다. 내게 어떤 신변의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는지라..ㅎ) 미리 준비해 놓은 나의 사후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꾸미고 애도해 달라고 말하고 떠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기도문,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올 때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와달라는 주문도 미리 해놓고 싶다. 앗.. 꼭 와달란 말로 들릴 수 있으니 오지 않아도 괜찮단 말도 전해야지.. 


오래된 직장동료 지예(실명은 아니다^^)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이자 지적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두고 있다. 내가 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기에 종종 교육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한다. 


"엄마가 미리 자기 납골당도 정해놓고, 지환(동생/이 또한 실명 아님^^) 이도 미리 데려가서 보여주고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아직 우리 엄마는 60대라 젊으시지만 언제 갑자기 아프실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니까.. 미리 준비해 놓고, 나중에 엄마가 없더라도 여기에 오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라는 이야기도 해주고 하면 지환이가 마음의 준비를 좀 더 안정감 있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엄마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오면 만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다행히 나는 "여기에 오면 아빠를 만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용인이라 집에서 멀지도 않다. 그럼에도 자주 못 가지만ㅜㅜ

내가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빠가 있어. 그리고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최애작가인 박완서 작가님도 같은 곳에 계셔.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큰 안도감이 생기곤 한다. 

다만, 안도감 뒤에 질문 하나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긴 한다. "그럼 엄마는?" 

난 엄마와 아주 오래전 작별 아닌 이별을 했고, 오랜 시간 그리움과 원망이 뒤엉킨 감정상태로 엄마를 삭혀버렸다.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아있기는 한 건지 알 길이 없는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은 Nothing 그 자체다. 

아마도 나의 죽음준비 다음 단계는 '용서와 화해'가 되어야 하는가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