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8
'리스크' 와 '데인저러스' 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3년 전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이동석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학자로서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당사자 중심의 가치철학을 잘 전달하시는 걸로 정평이 나있는 교수님이시다. 교수님께서 강의를 진행하시던 중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셨는데, risk와 dangerous의 차이를 알고 있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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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risk): 상해나 손실 등 부정적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확률
데인저러스(dangerous): 위험한
언뜻 보기에 두 단어 모두 '위험하다'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흔히 risk라는 말은 금융, 투자 쪽에서 과도한 투자를 조심하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dangerous는 물리적 안전을 강조할 때 사용하곤 한다.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알 수 있듯, 두 단어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단어이다.
risk는 근본적으로 '가능성' '확률'의 의미이고, dangerous는 '명확한' 위험을 뜻한다.
그렇다면, 장애학을 강의하신 이동석 교수님께서는 왜 이 질문을 하신 걸까?
장애인복지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risk와 dangerous를 잘 구분하셔야 해요. 이게 장애인 당사자에게 위험해서 하면 안 되는 건지, 위험할 가능성이 있어서 우리가 안 하는 건지... 우리의 역할은 risk를 감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시간이 오래 지났기에 교수님의 말씀이 내 스타일대로 바뀌기는 했겠지만, 대략 이런 의미였다.
올해 초부터 발달장애인에게 사별교육, 죽음준비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장동료들을 중심으로 묻고 다니고 있다. 물론 대부분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면서도 "꼭 해야 할까?" "굳이?" "그걸 사람들이 들으려고 할까? 너무 무섭잖아"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도 꽤 많았다. '죽음'의 성격이 부정적이니 당연한 반응이라 여겼다.
실제 양적 확인을 위해 3월에 진행한 '발달장애인 사별준비교육 필요도 조사' 설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복지현장 실무자들은 대부분의 답변이 필요성 인식은 60-70% 정도였고, 이 역할 또한 웰다잉 전문가들의 몫이라 답변했다. 막상 발달장애인의 가족(부모, 형제자매)들의 답변은 90% 이상 장애인복지 실무자들이 교육해 주길 바라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 같은 주변 동료들의 반응과 조사결과를 보면서 이동석 교수님의 질문이 떠올랐다. risk와 dangerous의 차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실무자들에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발달장애인 분들과 사별준비교육을 진행했다. 이 날 우리가 나눈 주제는 '나의 삶 전체를 회고하기'와 '죽음에 대한 나의 감정 떠올려보기'였다. '임종체험' 영상을 보면서 체험자들의 인터뷰를 함께 시청했다. 관 속에 들어가 10분 정도 누워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았는지, 사랑표현을 안 하고 살았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시청한 발달장애인 분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여러분들이 내일 죽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요?"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매우 자유롭고 편할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어렵기에 (특히나 발달장애인+성인+남성인 경우 감정 읽기와 표현이 정말 정말 어렵다)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장치를 활용했다. 이른바 '감정구슬'을 만들어 보았다. 죽음을 앞둔 나의 감정을 골라 감정의 크기만큼 개수를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각자의 감정이 얼마나 다르고, 다양한지 즉시 확인하고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정훈(가명)님은 5개의 감정구슬을 2개씩 공평하게 골라 담았고, 진석(가명)님은 슬픔/화남/놀람 부정적 감정만 골라 담았다. 나는 4개의 감정구슬을 1-2개씩 골라 담았다.
정훈님은 "모든 감정이 똑같이 있어야 제가 마음 편하게 죽음을 준비할 거 같아서요" 진석님은 "죽는 거 싫고 무서워요. 아직은 죽기 싫어요!" 라며 본인들이 골라 담은 구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정훈님께는 놀랍도록 현명하고 마음의 평정을 잘 찾는 사람이라고 지지해 주었고, 진석님께는 무섭고 싫은 게 당연한 거니 솔직하게 표현해 주어 좋다고 공감해 주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 살면서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지만 10분 정도 상상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주었고, 그 과정을 특별히 슬퍼하지 않았다.
흔히들 사별과 죽음을 교육한다 말하면 유서 쓰기, 장례준비, 이별의 경험 나누기와 같은 슬프고 아픈 과정을 거칠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내용도 포함되긴 하나, 삶을 돌아보고 남은 삶을 주도적으로 준비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시작 전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거부감을 쌓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 실제, 어르신 대상 웰다잉 교육을 오래 하신 강사님께서도 많은 어르신들이 내가 이런 걸 왜 듣냐며 거부하시는 경우가 많다 한다. 하지만, 막상 교육을 듣고 나면 만족함을 넘어 행복감을 느끼시는 경우가 많다한다. 죽음을 말할 거라 생각했던 시간이, 삶을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발달장애인들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dangerous 하지 않다. 물론 risk는 존재하지만.. 그간 생각하지 않은 가족과의 사별, 나의 죽음을 떠올려야 하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가라앉혔던 마음을 헤집어 놓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죽음/사별 관련 교육 후에는 2-3일 뒤에 일종의 사후관리로 마음이 불편하거나 슬픔에 시달리는 교육생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나 또한 웰다잉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마음이 헤집어지고 후폭풍을 겪기도 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죽음을 바라봄이 삶을 준비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그 과정을 거쳤고, risk 한 상황을 경험했기에 발달장애인들에게도 전달해 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동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risk와 dangerous를 구분해야 한다. 위험해서 하면 안 되는 것과 위험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걸 감수하고 해야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발달장애인들과 죽음과 사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 다만, 위험할 가능성은 있기에 수위와 전달방식의 조율은 필요하다. 그게 risk를 관리하고 감수하면서라도 끌고 가야 하는 장애인복지 실무자들의 역할이다.
자신의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려 5개의 감정구슬을 똑같이 2개씩 선택한 정훈님. 모든 사람은 결국 자기를 위로하고 보호할 수 있는 길로 알아서들 찾아간다. 그 또한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risk 관리 아니겠는가. 발달장애인들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