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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habgirl Apr 27. 2024

지호에게...

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9

*등장인물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지호야 안녕?

지호가 선생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너무 오래전이라 말이야.

지호를 처음 본 건 2016년이었는데, 내 기억에 마지막에 본 건 2019년인 거 같아.

유난히 나를 좋아하고 잘 따르던 지호야.

말은 할 줄 모르지만 '어' '어' 소리를 내며 손짓발짓 해가며 다양한  표정으로 자기 마음은 늘 열심히 표현하던 너였어.

나만 보면 복도 저 끝에서도 배시시 웃으며 달려오고, 밥 먹을 때도 계속 쳐다보면서 웃고 그랬잖아.

복지관 선생님들이 다들 지호가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나를 알만큼 말이야. 그렇지?

내가 딱히 뭘 해준 것도 없는데, 대체 네가 나를 왜 좋아하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추측하기로는 너의 누나와 닮아서 아닐까?라고 얘기하곤 했었단다.

지호가 지금은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있을지 많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된단다.

그때 같이 일했던 김 00, 박 00, 이 00 선생님들한테도 가끔 한 번씩 지호 생각나냐며 니 이야기를 하곤 해.

활동지원사 선생님들과 같이 다니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지호는 늘 엄마가 데려다주셨잖아.

본인 가게도 하시면서 바쁘신 중에 늘 차로 태워서 집에서 복지관까지 태워다 주시느라 어머니가 참 애를 많이 쓰셨었지.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지호 네가 지각하거나, 안 나오거나, 누나랑 같이 오는 날이 생겼던 거 같아.

얼마 뒤에야 알았어. 어머니가 두통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가셨고 뇌암 진단을 받으셨단 사실을.

지호는 엄마가 왜 집에 없는지, 왜 엄마와 복지관에 오고 갈 수 없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사실 설명해 주어도 지호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내용이니까..

그 뒤로 선생님은 너희 어머니를 한 번도 뵙지 못했어. 한 6개월쯤 지났을까.. 7월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단 소식을 전해 들었어. 당시 선생님은 해외에 있던 터라 장례식장에 가보지도 못했었어 죄송하게도 말이야.

그 뒤에 선생님이 본 지호의 모습은 놀랍도록 점점 안 좋아졌어. 속상할 만큼.. 머리는 늘 엉망이었고, 감지 않아서 떡이 잔뜩 져 있었고. 손톱은 길고 지저분하고. 누가 봐도 불안함이 역력한 행동들을 계속하기도 했었지. 그리고 전에는 전혀 없던 행동. 수시로 양손을 혀로 핥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었어. 그 빈도가 점점 늘어가더라.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건 "지호야 하지 마! 더러운 행동이야"라는 말 밖에는 없었어. 네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엄마 없는 불안함이 얼마나 크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는 하면서도 막상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는 전혀 몰랐던 거 같아..

한 동안은 한창 추운 겨울날. 거의 한 달을 내리 스포츠샌들을 신고 와서 놀라기도 했었어. 지호네 반을 담당했던 선생님에게 들었단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로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하신단 소식을.. 지호를 키운 건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기에 아버지는 지호를 감당하기 힘드셨던 거 같아. 지호는 지호대로 갑자기 사라진 엄마기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안 되니 점점 더 힘들었겠지? 그런 너를 보는 아버지는 더 힘드셨을 테고 말이야.

"지호 아버지가 지호 시설에 보내려고 알아보고 계신대요. 너무 힘들어서 더는 데리고 못있겠다고 하시나 봐요"

사실 선생님은 알고 있었어.. 아버지가 너를 멀리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려고 알아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마음 아프지만 너를 감당하며 생계를 꾸리는 건 어려우셨나 봐.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순간 네가 복지관에 보이지 않더라.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말이야. 네가 어디로 갔는지는 복지관 선생님들 아무로 몰라.. 정말 아무도.

지호야.

선생님은 요즘 너처럼 가족들과 갑자기 작별하는 사람들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어. 혼자 공부도 하고, 니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해. 근데 말이야 그때마다 네 생각이 정말 많이 난단다. 지호는 지금 어디서 뭐 하며 살까. 잘 살고 있을까. 그때 했던 행동들은 이제 없어졌을까? 더 안 좋아졌으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만약 선생님이 조금만 더 일찍 이런 필요성을 알았다면 지호에게도 천천히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지 않았을까. 아니 준비는 못 시켜줘도, 적어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마음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여전히 선생님 주변에선 엄마, 아빠가 왜 갑자기 사라진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 선생님도 아직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이 지호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잘 살펴보고 잘 알려주도록 해볼게. 어디서든 꼭 잘 지내길 바라 지호야. 선생님이 널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단 걸 잊지 말아 줘. 안녕 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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