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habgirl May 05. 2024

잘 넘어지는 방법

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10

때는 바야흐로 2002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즈음이었다. 

대학 4학년 2학기이던 2001년 10월에 취업한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돈을 벌게 되었다. 

6개월가량 적응기를 거쳐 직장인 패치를 장착하고 나니 취미생활 하나쯤 만들고 싶었다. 

당시 무슨 연유였는지 (유행도 아니었건만ㅎ) 인라인스케이트에 관심이 갔고, 돈도 있겠다 덜컥 16만 원짜리 인라인스케이트를 장만했다. 22년 전의 16만 원이니 지금 돈으로 치면 30만 원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 평소 최소한의 소비를 추구하는 내겐 과소비였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장만하고 동네 놀이터에서 꾸역꾸역 연습을 하는데 실력이 도통 늘지 않았다. 기본적인 운동신경이 없는 데다 겁도 많아서 온몸이 쑤시기만 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앞으로 가는 게 다였다. 비싼 장비도 샀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배울만한 곳이 없나 서치 해보았다. 여의도 한강공원에 모여 인라인스케이트를 연습하고 가르쳐주는 동호회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무료였고 목동에서 여의도까지는 5호선으로 한 번에 금방이라 딱이었다. 

바로 다음 주 일요일 주섬주섬 스케이트를 챙겨 여의도 한강공원의 모임장소로 찾아갔다.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대략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모임장인듯한 젊은 남자분의 간단한 지도가 있었고 연습할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지도 내용이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난 앞으로 전진하고 턴하고 빠른 속도로 나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넘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닌가. 


"인라인 탈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건 안전하게 잘 넘어지는 거예요. 안 넘어지려고 하면 더 크게 다쳐요. 어차피 넘어지게 돼있거든요. 안전하게! 잘! 넘어지는 방법을 몸에 익히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아 맞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었었다. 어린아이들은 넘어져도 크게 안 다치는 이유가, 안 넘어지려고 애쓰지 않아서라고. 어른들은 자꾸 안 넘어지려고 몸에 힘을 바짝 주니까 되려 더 크게 다치는 거라고. 


며칠 전 죽음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단톡방인 Death 톡톡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4부작 다큐영상을 추천받았다. 평소 다큐에 관심이 많은 나는 바로 유튜브에 들어가 시청자 모드에 돌입했다. 

'죽음'을 바라보고, 준비하고, 맞이하고, 정리하는 우리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1,3부는 유독 화두가 깊어 두 번 시청하기도 했다. 


유튜브 링크 공유 

https://www.youtube.com/watch?v=o_L59GyVPyA

1,2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3,4부는 <죽음에 말을 걸다>라는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현실고증과 향후 제언이 적절한 비중으로 기획된 퀄리티 높은 작품이었다. 

4편의 영상을 완주한 뒤, 든 생각은 죽음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였느냐 아니냐로 크게 갈린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받아들임의 주체가 죽어가는 당사자가 아닌 남아있는 '가족'이라는 점이었다. 

인라인을 탈 때 넘어지는 건 당연하다 여기며 잘 넘어지는 법을 배우고 연습한 사람이 안전하게 잘 타는 것처럼, 죽음준비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의학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 그만큼 평균수명이 연장되었지만, 유병장수라는 말이 알려주듯 병을 달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며 장수를 누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다는 위의 시술, 장치들은 어마어마한 통증과 부작용 속에 그저 숨이 끊기지 않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말할 것도 없고, 혈액상승제는 욕창을 유발하며, 심폐소생술로 인해 갈비뼈가 골절되거나, 목관 삽입을 위해 목구멍을 벌리는 과정에서 치아가 부러지는 경우도 다반사라 한다. 인라인을 타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장비들을 사고, 약을 먹어가며 아등바등거리다 정작 인라인은 제대로 타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 

요즘 국내 사망원인에는 노환이 없다. 


나는 이 말이 좋은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만큼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의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지금의 우리는 자연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과도한 의학 발달과 의존이 '자연사' '노환'을 부자연스러운 것, 불효하는 것, 무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남은 가족의 불효, 무능을 상쇄시키기 위해 정작 죽음의 길로 가는 당사자는 더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 또한 고통스럽긴 매한가지일 테지만.. 마치, 인라인을 타면서 절대 넘어지면 안 돼! 넘어지면 너는 못난 거야!라고 생각하며 힘을 바짝 주다 되려 넘어져서 크게 다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나이가 들어 아프고 병드는 게 당연하고, 인생 중반부가 넘은 나 또한 샅샅이 검사하면 최소 5개의 병명은 찾을 수 있을 텐데... 나의 병과 나이 들어감, 서서히 죽어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우리는 죽음은 부자연스러운 것, 치료와 회생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걸까. 

요양병원, 병원에서의 고통스러운 치료를 중단하고 가정 돌봄과 통증관리를 택한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극히 소수지만 '왕진진료' 가 병행되었기에 가능했다. 가족들은 몸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고 더 행복하다 했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치료대신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가족의 품에서, 내가 살던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을 누구라도 불효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준비했기에 이 같은 선택과 실천을 할 수 있었다. 잘 넘어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 같았다. 

이 영상들을 보고 나서 고민이 더 깊어졌다. 발달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이 잘 넘어질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연습도 시켜주고 싶은데 여전히 내겐 어렵기만 하다. 나 또한 넘어질 줄 모르고, 힘 바짝 주다 넘어져본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도 말곤 준비된 게 없다. 내가 지금 그들에게 가장 쉽게 준비시켜 줄 수 있는 건 '넘어져도 괜찮아. 나도 이렇게 잘 살잖아'라는 말을 구구절절 들려주는 것. 그게 다가 아닐까? 

이전 09화 지호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