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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Jan 28. 2024

이커머스업에 애정을 갖게 된 이유

MBA를 와서 얻은 게 뭐가 있나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내 일에 진정한 자부심과 애정을 갖게 됐다는 것이 큰 소득중 하나다. 나에게 있어 회사란 월급을 받고 미래를 다져가는 공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집스러움이 이커머스로 이끌었다. 일이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 높은 KPI를 달성하기에 버거웠고 특히 회사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운영할 때마다 답답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전이 공감되는 곳으로 이직했고 업무가 익숙해지니 부족한 점을 찾고 업그레이드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유통업이 가진 연봉 테이블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모르는 이를 위해 부연 설명하자면 유통업은 연봉이 짜기로 유명하다.) 이 유리천장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은 업계 변경이라는 생각이었다. 직무도 MD 직군에서 전략기획 쪽으로 변화해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동기들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전통 제조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며 이커머스는 소비자 피라미드의 최하단에 있다고 느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국가 간의 정치, 경제 등 큰 그림으로 움직이는 금융, 석유화학 등의 비즈니스가 있다면 중간층에는 자동차, 선박, 반도체, 컴퓨터, 휴대폰 등과 같이 같은 B2C여도 판매의 스케일이 남다른 제조업들이 존재한다. 또 그 밑에는 패션, 식품 등 나름의 제조 기간을 거치긴 하지만 변화의 주기가 중간층보다 빠른 업들이 존재한다. 그 밑에 있는 게 바로 이커머스다.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시는지? 대학원 진학 초창기에는 '스케일 큰' 산업에 종사하는 동기들이 가진 지식과 업무가 대단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당장 인스타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 뭔지 아는 게 중요한데 뭔가 다른 그림을 보는구나 싶었다. 동기들이 아무리 '우리도 잘 모른다, 이커머스도 멋있다'라고 했지만 별로 와닿지 않았다. 이커머스는 생각보다 짜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에 내 친구가 자주 보는 유튜버가 누군지 궁금해해야 하는 소비자 초초초밀접업이다. 다음 주에 눈이 펑펑 쏟아진다고 하면 SNS에서 유행하는 오리집게를 얼른 구해다가 팔아야 하는 것이 이커머스의 숙명이다. 코로나 대유행 직전, 없는 재고를 끌어모아 그 당시 최고가로 KF94 마스크를 판매했을 때의 짜릿함이란! 조선시대로 따지면 '쯧쯧, 아무리 돈에 미쳐도 그렇지 사람들 목숨을 가지고 잇속만 생각하다니'하고 혀를 찼겠지만 상도덕이란 없이 오로지 매출에 의해서 내 편과 네 편이 갈라지는, 살벌한 경쟁시장이 바로 이커머스다. 이커머스에서는 '매출이 곧 인격이다'라는 표현도 쓸 만큼 어떻게 하면 매출을 많이 낼 수 있을지에 혈안이 되어 있고 판매자들 역시도 더 이득 되는 채널로 옮겨가는 것이 상놈의 생태이다. 이커머스는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다. 성장기에 있는 산업이어서도 있겠지만 '온라인'이라는 특성이 그렇게 만든다.





제품을 제작할 필요 없이 좋은 판매자 혹은 제품을 진열만 하면 되는 이커머스에서는 사람들이 어디에 돈을 많이 쓰는지에 대해 늘 촉각을 다투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데이터들이 누적되어야 직감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보더라도 이게 잘 나갈지 아닐지 판단할 수 있다. 이 색다른 점이 차별화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커머스가 주요 산업이 되면서 브랜드 출신들이 불안해하며 이커머스로 많이 넘어오기도 했지만 나는 단순히 이커머스가 요즘 대세라서 이 업이 가치 있다고 느끼진 않는다.


1990년대에 온라인 비즈니스가 시작됐다고는 하나 스마트폰이 생겨난 시점부터 '요즘의' 이커머스라고 할 수 있는 회사들이 생겨났단 걸 가정하면 대략 10년도 채 안된 짧은 역사를 가졌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2G 폰으로 회귀하지 않는 한 이커머스는 앞으로 쭉 지속 성장해나 갈 거고 그 역사에 내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벅차오를 때가 있다. ㅡ덧붙여 내 기억 속에 윈도우 95부터 변화해 나가는 시기에 자랐다는 것이 뿌듯한 부분 중 하나다.ㅡ 풀필먼트 비즈니스 모델이 몇 년이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 불안감이 바로 이 산업의 매력이다. 아직 해결해 나가야 할 과업이 많은 상황에서 어떤 회사가 살아남을 것이며 또 어떤 형태로 주력 모델이 변화해 나갈 건지 지켜볼 수 있다. 모든 것은 사람들의 심리와 밀접한 연관이 되어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것을 예측하고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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