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 or효녀
영조의 딸 화순옹주는 열흘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영조와 그의 후궁이었던 정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순옹주는 열세 살에 김한신을 만났다. 김한신은 영의정 김홍경의 아들인데 키가 크고 인물이 준수하며 총명한 사내였다. 왕의 딸과 영의정의 아들은 혼인했고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자식 없이 25년 동안 오순도순 잘 살다가 서른여덟 살이 되던 해에 김한신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이유가 병 때문이라는 기록도 있고, 사도세자가 홧김에 던진 벼루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한 가지-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순옹주도 결심한 것이다. 따라 죽겠다고.
딸이 곡기를 끊고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 영조가 달려와서 그녀를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영화 '사도'를 통해 짐작하게 되는 영조의 성격으로는 다정한 아버지가 아니었을 듯한데, 아비 말 안 듣고 끝까지 고집부리며 남편따라 죽겠다는 딸을 보면서 얼마나 속 터졌을까.
부모를 여읜 자식들도 살고,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도 죽지 못해 살아간다. 다들 저렇게 지내는데 너만 왜 그렇게 괴로워하냐고 오버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슬픔을 견디는 능력은 개인차가 있다. 화순옹주는 살아서 슬픈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인데, 남편을 얼마큼 사랑했기에 따라 죽을 수 있을까. 욱 하는 마음에 돌발적으로 죽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식사를 중단하고 서서히 시들어가는 동안 서른여덟 살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로만 죽을 만큼'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은 누구에게 허락된 것일까. 결국 곡기를 끊은 지 보름 만에 화순옹주는 눈을 감았다.
그녀를 위한 열녀문을 세우자는 안건에 대해서는 영조가 반대했다. 아비 가슴에 대못을 박은 딸이 뭐가 예뻐서 열녀문까지 세워주나 싶었을 것이며 그 무렵 사도 세자가 한창 속 썩이고 있었을 테니 영조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아들인 사도세자가 던진 벼루에 맞아서 사위 김한신이 죽은 게 사실이라면-! 또 그 뒤를 따라 딸까지 세상을 떠났으니 아비 된 입장에서 영조는 '아이고 내 팔자야' 싶었을 것 같다. 훗날 정조에 의해 열녀문에 세워지기는 했는데 자손들이 알아주면 무슨 소용인가. 정작 본인들은 괴로웠을 인생.
여덟 살 연상의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조건으로 따져보면 결혼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가 이혼남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이혼남은 우리 가족도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가 누구를 만나 어떻게 결혼했고 어떻게 이혼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결코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 모르게 6개월 정도 그를 만나는 동한 걱정도 많았는데, 그 무렵 손금을 잘 보는 선배와 속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손금을 잘 본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손금 그 이상의 것을 짚어내는 그 선배는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우리의 사랑이 곧 마무리될 거라고 했다. 가족을 속상하게 하거나 부모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못하는 나의 성향상 곧 헤어지게 될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특별한 효녀는 아니지만 가족들을 걱정시키면서까지 연애를 지속할 용기가 없었고 그건 그만큼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선배의 말처럼 그와 헤어졌으니 나는 열녀보다는 효녀 쪽에 가까워진 것일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
화순옹주. 열녀일 수는 있지만, 효녀일 수는 없었던 한 여자의 인생.
머리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행동으로 따라 하기는 힘든 그 사랑.
사랑을 따라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 남의 사랑, 한 줄 요약
: 화순옹주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