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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joicewons Oct 29. 2023

기도하는 아침

Peace be with you


국군이나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단다.


연일 화제가 되고있는 이-팔 전쟁의 뉴스를 보며 수많은 무력감과 실망감 답답함이 밀려오다 문득 생각난 구절이 있었다. 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 중에서..


아이들과 독서수업을 하면서 <몽실언니>, <달님은 알지요> 등 625 전쟁의 전후 상황을 담은 책들을 읽다 보면,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이 남긴 참혹함에 대해 알고 나면, 그 어떤 이유라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죽이는 일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음을, 또한 결코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간절함을 갖게 된다.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지만, 나에게 전쟁이란 이렇게 책을 통해서나, 교과서를 통해서 접하는 엄연한 옛 일이다. 과거의 이야기. 그런데..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믿기 어려운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인 땅을 놓고 우크라이나-러시아가, 그리고 정말 오래전부터 뿌리 깊은 갈등이 있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까지.. 21세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탱크가 들이닥치며,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남과 북의 전쟁도 1953년, 미국과 소련의 중재로 잠깐의 쉬는시간을 가졌으나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내지 못한 채 여전히 멈춘 전쟁으로 남아있다.


전쟁통에 막 태어났거나 대여섯 살 먹은 코흘리개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그 황폐해진 땅에서 어렵고 모진 세월을 버티다가 이젠 백발노인이 다 되어가고, 사지 멀쩡하고 건장한 청년들은 전쟁터에서 젊음도 잃고 가족도 잃고 몸과 마음에 상처로 얼룩진 삶을 살다가 이제는 한분 두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그렇게, 어느새 잊혀가고 있다.


인류는 전쟁을 겪어오며 수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을 선택하고 있을까.


어쩌면 세상은 서로 사랑해 달라는, 살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마다의 지나온 세월, 민족의 역사 속에 켜켜이 쌓여온 수많은 억압, 상처, 차별, 수치심, 혐오가 견디지 못해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그 누가 오랜 진통을 해결해 줄까. 그 누가 목마른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까.


휴전 중인 남과 북에도, 전쟁으로 대치하는 모든 땅에도, 오늘 우리 마음에도 미움이 눈 녹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기도를 한다. 기도할 수밖에 없다. 미움과 판단이 아닌 사랑으로 덮으시기를. 내 안에 생명의 빛으로 덮으시기를.


사랑하는 주님.

우리 발 앞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시신들이 있습니다. 이라크인, 아프카니스탄인, 미국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 아이들, 무슬림들, 그리스도인들...

사람들이 죽고, 죽고, 또 죽었습니다.
전쟁으로 죽음을 맞이한 형제자매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또한 우리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실패를 당신의 평화가 오는 길로 삼아주소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종지부를 찍어주소서.

전쟁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 우리가 손쉽게 사로잡히는 이 망상, 그리고 이 망상의 어두운 힘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는 스스로 평화로 가는 길에 이를 수 없음을 압니다. 평화를 이룬다면서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몰아치셔서 우리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으소서.

그렇게 죽음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주소서. 아멘.

- 스탠리 하우어워스 <전쟁과 죽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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