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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Aug 20. 2021

엄마랑 떨어지는 게 제일 싫어

내가 기억하는 인생 최초의 불안, 분리 불안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극도로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아이였고,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는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아, 무엇보다 나는 유치원에 갈 때마다 울었다. 정확하게는 유치원 입구에서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에 늘 오열했다. 실제로 엄마와 떨어질 때만 펑펑 울었지, 막상 교실에 들어가면 엄마는 까맣게 잊고 친구들과 잘 놀았다. 


 내 나이 다섯 살, 빨강반 시절의 일이 또렷하다. 유치원 여름방학이 끝나고 처음으로 등원하던 날이었다. 그 시절에도 방학은 달콤했는지, 출근해야 하는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평소보다 더 심하게 울었다. 선생님은 곤란해하며 나를 달래다가 지쳤나 보다. 전에 없던 강수를 두었다. 빽빽 우는 나를 꽤 강하게 붙들어 그 틈에 엄마가 유치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는 나를 교실로 데려갔다. 빨강반 교실은 복도 가장 안쪽에 있었다. 긴 복도를 걸으면서도 눈물을 쉽게 그칠 수 없었다. 교실에 들어와서도 그랬다.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계속 울었다. 반가운 친구들이 한 명씩 들어오는데도 말이다. 친구들이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내가 슬픈 건 슬픈 것이었으므로! 결국 선생님은 나를 불러 교실 문 바로 옆에 서도록 했다. 나는 벽을 마주한 채로 한참을 서있어야 했다. 신나게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등지고 서럽게 울었다. 꽤 오래 서있었다. 다리도 아팠고, 즐거운 친구들 틈에 홀로 벽 앞에 서 있는 내가 창피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진정되면서 '이제 눈물을 그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상냥한 얼굴이지만, 그녀는 아까 세모눈을 뜨고 나를 혼꾸녕 내던 사람. 그녀에게 나 이제 안 울겠노라 말할 용기는 없었다.

 지금 떠올려도 서럽다. 우는 아이를 벽에 세워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슬픈 핵심 기억이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은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해 본다. 그녀도 돈 벌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터에서 매일같이 울어대는 진상 손님, 뭐 그런 거 아니었을까.


어릴 땐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참 무섭고 싫었다. 지금은 혼자 카페 가는 게 낙인데! (canon af35ml - walgreen200)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엄마는 출근해서 일을 하고, 나는 유치원에서 재밌게 놀다가 집에 가면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슬픔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인생 최초의 불안.


분리 불안 장애 [separation anxiety disorder]

분리불안장애는 애착 대상으로부터 분리될 때 혹은 분리될 것으로 예상될 때 느끼는 불안의 정도가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심하고 지속적인 경우를 말한다.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분리불안의 원인은 다양하다. 내 경우의 원인은 아래 항목으로 짐작된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성격의 나

과보호적 양육태도를 지닌 아빠

직장에 다니는 엄마

자주 바뀐 주 양육자: 외할머니, 이모, 동생이 태어난 후로는 베이비시터 아주머님


 모든 맞벌이 부부의 자녀가 분리불안을 겪는 것은 아니다. 내 사촌들도 모두 외할머니 손에 컸지만 나처럼 심각한 분리불안은 없었다. 그래서 나의 분리불안은 기질이 아주 강력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의료적 견해가 아니라 분리불안을 겪은 개인의 잠정적 판단이다. 


 어떤 아기는 2.3kg으로 태어나고 어떤 아기는 4.8kg으로 태어난다. 유전이나 산모의 건강, 영양 상태 등 여러 원인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유가 어쨌든 그렇게 태어난 거다. 내 불안도 그런 게 아닐까? 아기가 태어날 때 여러 가지 감정의 공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단지 남들보다 불안이라는 공의 사이즈가 유난히 컸을 뿐이다. 남들이 탁구공만 한 불안을 쥐고 태어날 때, 나는 축구공 사이즈의 불안을 안고 태어난 게 아닐까? 내 불안의 외부적 원인을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 원인이 되었을 수 있겠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양육 과정에서 나에게 불안을 선사한 인물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 와서 누군가를 원망하며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이유가 너무 많을 때 오히려 '그냥'이라고 대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남보다 조금 큰 불안을 쥐고 인생을 시작했다고 치기로 했다. 누구나 평균보다 크거나 작은 공을 쥐고 태어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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