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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Oct 07. 2021

왜요? 제가 약 먹고 10kg 찐 사람으로 보이세요?

내가 살이 찐 건 정말 정신과 약 부작용 때문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이지 않은 진료과목이다. 내가 갈 땐 언제나 대기 환자들로 붐비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정신과 진료에 대해 꽤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정신과는 정말이지 미쳐 날뛰게 되어 가는 곳이라고 이야기하던 시절은 지난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정신과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약에 의존하게 된다거나, 수많은 부작용이 수반된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때문이다. 


 나도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했다. 대낮에 졸음이 쏟아져 버티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잔 적도 있다. 식욕은 늘었는데 변비가 와서 고생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체중이 늘었다. 10kg 가까이 쪘다. 당혹스러웠다. 이미 불안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다이어트까지 해야 하나 싶어 절망감이 들었다. 물론 온전히 약 때문에 10kg이나 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많이 먹기도 했으니까. 출퇴근할 때는 물론 업무 시간에도 숨이 차는 증상이 시작되었던 즈음부터였나. 데드라인이 주는 압박감과 말도 안 되는 지시에 대한 분노를 삭여가며 일하던 시절이었다. 모니터에 곧 들어갈 기세의 거북목을 한 채,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쉬느라 어깨가 들썩이면서도 내 입은 언제나 과자로 가득 차 있었다. 각종 과자 껍데기와 음료수 병이 키보드 옆을 차지했다. 누구는 스트레스받으면 입맛이 싹 사라져서 살이 빠진다던데. 불행하게도 나는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야식을 낙으로 삼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약 탓으로 돌리며 억울해했다. 잘 입던 옷이 맞지 않아 넉넉한 옷을 새로 사야 했고, 거울에 비친 내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 없었다. 


 약을 바꿨다. 매주 진료시간에는 내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변비나 졸음, 불면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꼭 말씀드렸다. 그러면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되, 불편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약을 조절해주었다. 약을 바꾸고 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사람마다, 때때로 변하는 증상마다 약을 섬세하게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나 체중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선생님, 저 운동을 열심히 하는 데도 살이 안 빠져요."

주 5일, 한 시간씩 크로스핏과 유사한 그룹 운동을 다녔다. 가벼운 유산소도 버거웠던 내겐 고강도 운동이었다. 게다가 간식과 야식을 끊었는데도 몸무게는 찔끔찔끔 줄었다. 약 때문에 체중 감량이 더딘 거라고 여기며 선생님의 새로운 처방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 드시고 계신 약은 살이 찔만한 약이 아닌데...'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살이 차오르기 시작할 무렵, 코타키나발루에서. 잘만 찍으면 살찐 티도 별로 안 난다. 최애 원피스가 낑길 땐 조금 슬펐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왜 하필 우울하고 불안해서 약을 먹고 폭식에 군것질을 일삼고 살이 쪄가지고 이제는 다이어트하기도 어려운 몸이 되었나?'라고 구구절절 통탄하며 우울에 빠져들기보다는 생각을 바꾸는 게 여러모로 이로웠다. 건강해지는 지금의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신건강을 위해 약을 꼬박꼬박 먹고, 체력을 위해 운동하고 있으니 결과물은 천천히 생각하자고. 그러면서 내 몸 자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타이트한 운동복에 군살이 삐져나올지언정 피트니스 센터의 거울을 외면하지 않았다. 내 몸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하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이전의 나와 비교하지 않을 순 없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몸무게가 4로 시작했는데! 하면서 과거 사진을 아련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당시의 충분히 날씬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마살이 튀어나왔네, 팔뚝이 굵네 하며 만족은커녕 내 신체의 단점을 찾아내기 바빴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멀쩡한 몸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가여운 마음까지 들었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하는 당연한 진리도 덤으로 얻었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두통이 오면 으레 먹는 타이레놀이나 상처에 바르는 후시딘에도 드물게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모든 진료과목을 아울러 처방받는 항생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는 흔하다.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약을 먹는 이유는 그걸 감수하더라도 약으로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처방약도 마찬가지다. 살이 찐다고 해서, 졸리다고 해서 약을 먹지 않고 병을 방치하는 건 감히 어리석은 짓이라 말하고 싶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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