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이 찐 건 정말 정신과 약 부작용 때문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이지 않은 진료과목이다. 내가 갈 땐 언제나 대기 환자들로 붐비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정신과 진료에 대해 꽤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정신과는 정말이지 미쳐 날뛰게 되어 가는 곳이라고 이야기하던 시절은 지난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정신과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약에 의존하게 된다거나, 수많은 부작용이 수반된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때문이다.
나도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했다. 대낮에 졸음이 쏟아져 버티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잔 적도 있다. 식욕은 늘었는데 변비가 와서 고생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체중이 늘었다. 10kg 가까이 쪘다. 당혹스러웠다. 이미 불안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다이어트까지 해야 하나 싶어 절망감이 들었다. 물론 온전히 약 때문에 10kg이나 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많이 먹기도 했으니까. 출퇴근할 때는 물론 업무 시간에도 숨이 차는 증상이 시작되었던 즈음부터였나. 데드라인이 주는 압박감과 말도 안 되는 지시에 대한 분노를 삭여가며 일하던 시절이었다. 모니터에 곧 들어갈 기세의 거북목을 한 채,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쉬느라 어깨가 들썩이면서도 내 입은 언제나 과자로 가득 차 있었다. 각종 과자 껍데기와 음료수 병이 키보드 옆을 차지했다. 누구는 스트레스받으면 입맛이 싹 사라져서 살이 빠진다던데. 불행하게도 나는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야식을 낙으로 삼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약 탓으로 돌리며 억울해했다. 잘 입던 옷이 맞지 않아 넉넉한 옷을 새로 사야 했고, 거울에 비친 내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 없었다.
약을 바꿨다. 매주 진료시간에는 내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변비나 졸음, 불면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꼭 말씀드렸다. 그러면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되, 불편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약을 조절해주었다. 약을 바꾸고 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사람마다, 때때로 변하는 증상마다 약을 섬세하게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나 체중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선생님, 저 운동을 열심히 하는 데도 살이 안 빠져요."
주 5일, 한 시간씩 크로스핏과 유사한 그룹 운동을 다녔다. 가벼운 유산소도 버거웠던 내겐 고강도 운동이었다. 게다가 간식과 야식을 끊었는데도 몸무게는 찔끔찔끔 줄었다. 약 때문에 체중 감량이 더딘 거라고 여기며 선생님의 새로운 처방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 드시고 계신 약은 살이 찔만한 약이 아닌데...'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왜 하필 우울하고 불안해서 약을 먹고 폭식에 군것질을 일삼고 살이 쪄가지고 이제는 다이어트하기도 어려운 몸이 되었나?'라고 구구절절 통탄하며 우울에 빠져들기보다는 생각을 바꾸는 게 여러모로 이로웠다. 건강해지는 지금의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신건강을 위해 약을 꼬박꼬박 먹고, 체력을 위해 운동하고 있으니 결과물은 천천히 생각하자고. 그러면서 내 몸 자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타이트한 운동복에 군살이 삐져나올지언정 피트니스 센터의 거울을 외면하지 않았다. 내 몸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하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이전의 나와 비교하지 않을 순 없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몸무게가 4로 시작했는데! 하면서 과거 사진을 아련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당시의 충분히 날씬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마살이 튀어나왔네, 팔뚝이 굵네 하며 만족은커녕 내 신체의 단점을 찾아내기 바빴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멀쩡한 몸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가여운 마음까지 들었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하는 당연한 진리도 덤으로 얻었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두통이 오면 으레 먹는 타이레놀이나 상처에 바르는 후시딘에도 드물게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모든 진료과목을 아울러 처방받는 항생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는 흔하다.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약을 먹는 이유는 그걸 감수하더라도 약으로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처방약도 마찬가지다. 살이 찐다고 해서, 졸리다고 해서 약을 먹지 않고 병을 방치하는 건 감히 어리석은 짓이라 말하고 싶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