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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Aug 25. 2021

뜯기의 역사

손톱, 발톱, 굳은살, 두피 무엇이든 뜯어냅니다

 TV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가끔씩 본다. 오은영 박사님의 따뜻한 말이 다 큰 어른인 나까지도 위로해준다. 그런데 지난주 방송은 끝까지 시청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소름끼치게 똑같았기 때문이다. 손톱을 있는 대로 물어뜯어서 손톱을 깎을 찰나가 없고, 뜯을 손톱이 없어서 발톱을 뜯고, 손끝을 입으로 물고 빨아서 벌겋게 퉁퉁 부은 손가락, 손톱 뜯기를 혼내는데 훈육의 기승전결 없이 혼내다가 달래다가 다시 혼내는 아버지,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는 아버지. 영상이 트리거가 되었는지 공황이 올 것처럼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팠다.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금쪽이네에 적합한 솔루션이 적용되었다고 들었다. 다행이다.


 잠도 못 잘 정도로 손가락이 아팠던 밤, 불어 터진 손가락에 연고와 밴드를 발랐던 어린이. 내겐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동이었을까.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이 손톱 물어뜯기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완전히 고친 건 대학 졸업 이후였으니까. 20년도 넘게 손톱을 뜯어댄 거다. 그러면서도 고치려고 별 짓을 다했다.


[매니큐어 바르기] 손톱 위의 매니큐어를 긁어서 제거한 후 손톱을 깨물었다.

[네일아트 받기] 반짝이고 예쁜 손톱을 감상하다가 결국 매니큐어를 긁어서 제거한 후 손톱을 깨물었다.

[쓴맛 나는 손톱 영양제 바르기] 처음에는 으엑! 했지만, 곧 쓴맛이 사라지고 내 손톱 고유의 맛이 나서 손톱을 깨무는 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큐티클 밤 바르기] 이건 꽤나 효과적이었다. 손톱을 입에 가져가는 대신에 촉촉한 오일 밤을 손톱과 큐티클에 바르는 것! 그러나 시험기간이 되면 큐티클 밤을 바를 여유가 없었다. 문제에 골똘하며 결국 손톱을 깨물어 없앴다.


 인생에서 시험기간이 사라지고, 각종 큐티클 밤과 케어 오일을 섭렵하면서 손톱 뜯기를 멈출 수 있었다. 사회인으로서 남들에게 엉망인 손톱을 내보이는 게 창피해서 고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수많은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는 강사 일을 했다.


여행 중이라 손톱을 자르지 못했을 때의 사진. 손톱을 뜯던 시절에는 손톱 길이가 사진 속 손톱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난 아직도 무언갈 뜯는다. 화가 나거나 초조하면 손끝을 만진다. 주로 손톱 윗면이나 손톱 옆의 살갗을 긁는다. 손톱 옆에 거스러미가 생기면 참을 수 없다. 뜯어야 한다. 운이 나쁘면 피를 본다. 툭하면 발가락 옆에 생긴 굳은살을 억지로 떼어낸다. 가끔 피를 본다. 과하게 큐티클을 정리한다. 네일 니퍼를 잡으면 멈추지 않고 큐티클을 오려대서 니퍼는 버렸다. 대신 세라믹으로 된 펜 형태로 큐티클과 루즈스킨을 밀어서 제거하는데, 워낙 손에 힘이 좋아서 역시 가끔 피를 본다. 


 요즘 나의 주된 뜯기는 두피다. 예전에 잠깐 앓았던 지루성 두피염이 전 직장을 퇴사할 즈음에 도졌다. 피부과 선생님은 머리에 열이 오르면 자주 재발한다고 했다. 퇴사를 결심하게 했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내 머리는 스팀 그 자체였다. 문제는 퇴사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염증이 가라앉질 않는다는 거다. 두피가 우툴두툴해졌는데, 난 아마 그걸 즐기는 듯하다. 팔이 아플 정도로 쉴 새 없이 두피를 더듬다가 손톱에 뭐라도 걸려들면 바로 뜯어낸다. 높은 확률로 피를 본다. 이러다 보니 두피가 낫기는커녕 상처 투성이가 됐다. 다음날 머리를 감을 때 따가움을 참아내며 후회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을.


 왜 뜯을까? 불안해서? 맞다. 불안하면 뜯기가 심해진다. 많은 경우 불안과 강박은 서로 연관된다고 한다. 나는 불안이 심해지면 확인 강박이 심해진다. (← 관련 글 참조) 그런데 전혀 불안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는 뜯고 있다. 뜯고 싶으니까! 그래서 뜯기는 강박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마음 상태와 관계없이 뜯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계속해서 뜯는 거다. 또, 많은 경우에 나의 뜯기는 출혈로 연결된다. 따라서 일종의 자해로 볼 수 있다. 자해, 참 무서운 말이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 몸을 다치게 한다'는 단어 뜻을 살펴보면 슬프게도 나는 매일 의도치 않게 자해하고 있는 셈이다. 치료받고 있으니 좋아지리라 믿는다. 어쨌거나 손톱 뜯기를 멈췄던 것처럼. 아, 혹시나 머리 뜯는 습관을 고쳐낸 분이 계신다면 간곡히 댓글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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