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by 지여다




경계를 지킨다는 것은 침묵을 통해 내 판단의 고유성을 보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9장에서 우리는 설명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다루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침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대의 언어가 이미 나의 경계를 침범했다면, 침묵을 지나 단호하게 말해야 할 순간이다.
바로 이때 필요한 문장이 있다.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하지만, 관계의 질서를 다시 설정하는 선언이다. 그것은 반격이 아니라, 경계의 선포이며, 나의 해석 주권을 지키는 정중한 장벽이다.

우리는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인삼자면살인(忍三字免殺人),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옛말은 인내가 곧 인간됨의 기준이라는 식으로 각인되어 왔다. 한국 사회는 인내와 순응의 미학을 지나치게 숭배해 왔고, 그래서 우리는 때로, 경계를 넘는 말조차 참아야 할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침묵은 종종 암묵적인 인정으로 해석된다. 듣고도 반박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대부분의 관계에서 문제는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그 말이 나를 어떻게 정의했느냐’에 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성공하겠어?”, “네가 예민한 거야”,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이런 말들은 조언처럼 가장되거나 충고처럼 포장되지만, 실상은 타인의 해석을 강요하는 언어 폭력이다. 이런 말 앞에서 침묵한다는 것은, 그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은 상대의 해석 프레임을 거절하는 말이다. 이 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나는 내 해석 기준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의 말이 나에게 유효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에게 유효한 언어만을 내면화할 권리가 있다.
둘째, 의도만큼 결과도 중요하다. 타인의 말이 악의가 없었다 해도, 그것이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왜곡된 해석을 남긴다면, 그건 해로운 말이다. 나는 해로운 조언을 거절할 수 있다.
셋째, 거절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정중한 거절은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존엄을 지켜주는 언어는 관계를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하버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언어 본능(The Language Instinct)』에서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고 조율하는 도구로 보았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바로 그런 관계 조율을 시작한다. 그것은 의도를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한 차단이다. 그래서 그 언어에는 감정의 격앙이 아니라 해석의 주권이 담겨 있다.

이 문장은 다양하게 변주하여 사용할 수 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예민한 게 아니라, 지금 그 말이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 방식은 저에게 맞지 않아서 따르긴 어렵습니다.” “그런 농담은 불쾌합니다. 다시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당신의 관점이고,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 모든 말은 공격이 아니다. 오히려 공격을 막기 위한 문장이다. 이들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지금 이 방식으로는 대화하지 않겠다” 는 것. 이는 당신의 경계를 지키는 새로운 구조의 시작이다.

관계의 본질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그리고 그 구조는 경계에 의해 지탱된다. 침묵은 구조의 기반이 될 수 없으며, 경계 없는 대화는 무례한 해석을 허용하게 된다. 따라서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는 존엄을 지키는 기술이다.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를 보존하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문장이다.

Pinker, S. (1994). The language instinct: How the mind creates language. William Morrow and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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