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일, 뉴욕 타임스에는 <한국인들이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비밀(The Korean Secret to Happiness and Success)>이라는 글이 실렸다. 재미교포 2세인 저자 유니 홍이 밝힌 비밀은 바로 '눈치(Nunchi)'였다. 저자는 '눈치'를 한국 특유의 문화라고 정의하며 "눈치가 (한국인들에게) 집단주의와 내향성,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라고 설명한다.
이 장에서는 다룰 이야기는 바로 이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상태’, 즉, 침묵이다.
한국 사회는 눈치로 작동하는 사회다. 말보다 빠른 해석, 표정보다 앞선 예측이 관계의 매너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 눈치는 위계 안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은, 곧 위계를 민감하게 감지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예민함이 아니라 순응의 기술이다. 눈치를 잘 본다는 건 곧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고, 이는 한국적 관계 구조에서 칭찬이자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눈치는 감정과 표현 사이를 단절시킨다. 사람들은 타인의 반응을 살피느라 자기 감정을 검열하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축시킨다. 얼핏 평온해 보이는 관계 속에 진심은 없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단순한 문화적 특성이라기보다는 구조화된 권력 체계의 반영이다. 사회심리학자 Geert Hofstede는 한국을 권력 거리(Power Distance Index)가 높은 국가로 분류했다. 이는 연령, 직위, 사회적 지위에 따른 위계가 강하게 작동하며, 구성원들이 권위에 도전하기보다 받아들이는 문화임을 의미한다. 이 구조에서 말은 지위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말의 진실성보다 누가 말했는지가 우선되며, 옳고 그름보다 나이와 직책이 발언권의 서열을 정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이른바 '서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구조로 고착되어 있다. 여기서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우선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비효율성과 억압성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냥 그렇게 넘어가자”, “지금 말하면 분위기 깨질까 봐” 같은 말들이 그 구조를 지속시키는 비공식적 규범으로 기능한다. 말하지 않음이 곧 성숙함이고, 침묵이 예의로 통용되는 사회에서, 말은 위계를 넘는 행위로 간주된다.
서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문제는, 말보다 체면이, 정당성보다 질서 유지가 우선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발언의 목적은 이해가 아니라 순응이며, 질문의 기능은 탐색이 아니라 확인이 된다. 이때 ‘예의 없다’는 비난은 위계를 넘는 자를 단속하는 도구가 된다. 침묵은 강요되지 않지만, 구성원들은 비판의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침묵을 택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위계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는 공적 조직뿐 아니라 사적 관계에서도 작동한다. 가족 안에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조직에서는 신입이 선배에게,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도 나이 차이가 커지면 수직적 소통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솔직함은 무례가 되고, 질문은 도전이 되며, 침묵이 예의가 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이 단지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정상성을 구성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서열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그런 권력이다. 구성원 스스로가 침묵을 선택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그것은 가장 교묘한 권력 구조다.
5장에서 다루었던 '무례는 설계되어 있다'가 권력자의 무례함이 구조적으로 정당화되는 방식을 분석했다면, 이번 8장에서는 그 구조 속에서 말하지 않는 이들의 침묵이 어떻게 권력을 재생산하는지에 주목한다. 5장이 권력자의 언행과 그것이 용인되는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8장은 그 구조에 동조하거나 침묵함으로써 권력을 내면화하는 사람들의 감정 역학에 집중한다. 말하자면, 5장은 권력의 작동을 외부적 침해로 본다면, 8장은 그것을 내부화된 통제 구조로 본다.
그렇다면 이 침묵의 언어는 어떻게 우리 감정을 억누르고, 표현을 축소하며, 결국 관계의 질을 침식시키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직심리학자 Amy Edmondson은 심리적 안전감이란 "내가 이 조직 안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다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조직에서는 실수나 질문, 비판이 벌점이 되므로, 구성원들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그 침묵은 조직의 창의성과 신뢰를 갉아먹는다.
서열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하는 구조에서는 바로 이 심리적 안전감이 결정적으로 결여된다. 질문은 곧 도전이 되고, 발언은 책임이 되며, 침묵만이 유일한 방어 전략이 된다. 그리고 그 침묵은 학습을 정지시키고, 피드백을 차단하며, 결국 조직 전체를 피로하게 만든다.
더욱이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비단 조직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윤리를 흔든다. 표면적으로는 예의와 존중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을 유지하는 명분으로 작동한다.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할 수 없는 사람, 말해도 되는 분위기와 말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가 명확히 구분될 때, 우리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위계적 침묵의 공동체를 살아가게 된다.
이 침묵의 사슬을 끊기 위해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것은 ‘무례하지 않게 침묵하는 법’이 아니라, ‘무례하지 않게 솔직하게 말하는 기술’이다. 말하되 존중하고, 표현하되 공격하지 않는 방식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저는 그 부분은 다르게 느꼈습니다", "그 말씀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말씀하신 취지는 이해합니다"와 같은 문장들은 질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경계의 언어다. 그리고 이 언어야말로 위계를 유지하면서도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단순히 용기를 요구하는 도덕적 선언은 충분하지 않다. 그 대신 다음과 같은 전략적 언어 방식이 필요하다:
첫째, 나 전달법(I-statement)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감정을 비난이나 평가 없이 전달하는 방식으로, 방어적 반응을 줄이며 상대의 권위를 정면으로 위협하지 않는다.
둘째, ‘사회적 피드백 프레임’을 활용하는 것이다. 개인 의견보다는 ‘전체의 효율’이나 ‘팀의 이해도’처럼 집단적 맥락을 전제로 말하면, ‘나서려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비친다. “이 부분은 팀 전체가 좀 더 명확히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셋째, “사전 동의 프레이밍”을 통해 상대의 주도권을 존중하는 화법을 취한다. 이는 위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해준다.
넷째, ‘다자 표현’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책임을 분산시키며, 개인 의견보다는 집단 반응의 전달로 위계를 완충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무례하지 않게 솔직하라’는 말 자체가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위험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서열 구조 안에서 말하는 행위는 종종 ‘질서를 흔드는 행위’로 간주되며, 말한 이가 손해를 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열 커뮤니케이션 구조 안에서 침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맞서기보다 조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지, 무작정 침묵하거나 무례하게 돌진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경계를 지키는 언어는 곧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구조에 균열을 내는 실천이다. 우리는 이제 비판 없이 따르거나 침묵하는 대신, 정중하면서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 전략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서열 커뮤니케이션의 함정을 피하고, 건강한 관계의 구조를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dmondson, A. C.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4(2), 350–383. https://doi.org/10.2307/2666999
Foucault, M. (1977).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A. Sheridan, Trans.). Pantheon Books. (Original work published 1975)
Hofstede, G. (2001). Culture's consequences: Comparing values, behaviors, institutions and organizations across nations (2nd ed.). Sage Publications.
Remes, O. (Writer). (2017, June 12). The anatomy of anxiety [Audio podcast episode]. In All in the mind. BBC Radio 4. https://www.bbc.co.uk/programmes/b08v8xjl
작가 주
서열 커뮤니케이션은 위계적 질서가 언어의 선택과 감정의 표현 방식을 선점하는 구조이다. 이 구조는 정서적 긴장을 회피하기 위한 '집단적 생존 전략'으로 기능하며, 개인의 자기검열과 관계의 정직함을 동시에 희생시킨다. 이 장은 바로 그 언어적 불균형에 대해 질문하는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