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잘 돕는 사람이 있다.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손을 내밀고, 자기 몫 이상의 짐을 기꺼이 감당한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기대는 높아지고 요구는 점점 당연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도움을 거절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놀랍다. 고마움 대신 실망, 심지어 분노까지 감지된다. 이때, 이 사람은 궁금할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지?"
많은 경우, ‘돕고자 하는 마음’은 단순한 선의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타인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내가 도움이 되는 존재임을 증명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특히 가족 내 역할 고정이나 성장기 환경에서의 승인 부족은 이러한 성향을 강화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해서 유용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전략인 셈이다.
심리학자 마르샤 리네한(Marsha Linehan)은 경계선 성격장애 치료 과정에서 '지나친 돌봄‘이 정체감 불안정성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개 '관계의 중심에서 벗어날까 봐' 불안을 느낀다. 따라서 타인이 도움을 거절하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조차 이를 관계의 거부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 존재의 근거를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끌어오는 구조로 굳어진다. 문제는 이 구조가 반복될수록 관계의 권력 역학이 변한다는 것이다. 도와주는 사람은 스스로를 ‘더 도덕적이고 성숙한 사람’으로 설정하고 상대를 ‘받는 입장’으로 고정한다. 그리고 상대가 도움을 거절할 때 상실감과 분노를 겪는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반복해서 도우면서 그 반응을 기대하거나, 관계의 방향을 통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심리적 지배가 된다. 특히 상대의 독립성을 위협하면서까지 도우려 한다면, 그건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 요구되지 않은 도움은 때로 통제의 다른 얼굴이 된다. 이 구조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권력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권력관계가 관계를 규정하며, 반복되는 호의와 돌봄 또한 상대를 관리하고 규율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여기서 구조는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도와주려는 사람이 자신의 경계를 흐리는 동안,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들은 상대의 착한 성향과 책임감, 인정욕구를 파악하고, 반복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감정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처음엔 "이번 한 번만 부탁해"로 시작했던 요청은, 점차 "당신이 안 해주면 내가 곤란해져요", "그런 것도 못 해줘?" 같은 말로 변질된다. 처음엔 연약한 척하지만 점차 상대를 정서적으로 지배하는 방식으로 관계가 전환되는 것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약자처럼 보이지만, 상대의 죄책감과 인정욕구를 자극해 통제력을 확보한다.
반복적인 도움은 단순한 친절 이상의 기능을 한다. 처음에는 자발적인 호의였을지라도,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 관계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는 구조로 변질되기 쉽다. 심리학자 해리엇 브레이커(Harriet B. Braiker)는 『기쁘게 하려는 병(The Disease to Please)』에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반복적 자기희생이 결국 상대에게 정서적 통제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돕는 사람은 자신이 유용한 존재로 보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부담을 감당하게 되며,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구속을 내면화하게 된다.
수전 포워드(Susan Forward) 역시 『감정적 협박(Emotional Blackmail)』에서, 가까운 관계에서 반복되는 호의와 희생이 ‘두려움(Fear), 의무감(Obligation), 죄책감(Guilt)’이라는 감정의 삼각구조(F.O.G.)를 통해 상대방의 조종 메커니즘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는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계약이 되어버릴 수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도움을 거절하는 순간, 마치 약속을 어긴 것처럼 죄책감이 작동하고, 관계의 주도권은 조용히 이동한다.
이 구조 속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갈등 상황이 발생해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이번만 도와주자"라는 말로 자기감정을 억제한다. 그러나 억제된 감정은 축적되고, 어느 순간 폭발한다. 그 시점에서는 관계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손상된 경우가 많다. 돕던 사람은 자기 피로에 지쳐버렸고 관계는 오염되었다. 이는 구조적 종속이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불안』(Status Anxiety)에서 "많은 친절은 사실, 타인의 사랑을 사기 위한 정서적 계약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선의를 가장한 인정 거래. 우리는 그 친절을 거절당했을 때, 단지 부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거부당한 것처럼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돕고 있는 게 아니라, 인정받으려 애쓰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진짜 도움이 절실한 누군가를 돕고 있는가? 아니면 인정을 위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 관계에서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진짜 도움이란,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는 선에서 이뤄질 때만 지속 가능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도움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독립된 인간 사이의 건강한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도움은 요청받았을 때에만 제공한다. 요청이 없는데도 먼저 개입하거나,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소모하는 것은 경계 침범이다.
둘째, 거절을 인정하자.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관계의 시작이다.
셋째, 나는 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짊어지려는 순간, 그 사람 역시 나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도움이 아니라 지배다.
넷째, 반복적으로 나의 도움을 당연시하거나, 고마워하지 않거나,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원으로서 소비하고 통제하고 있다.
관계 안에서 도움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도움은 선택이어야 하고, 요청에 기반해야 하며, 명확한 경계 안에서만 제공되어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자신의 인정 욕구 때문에 도움 받는 사람에게 종속되어 이용당하는 침범의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Braiker, H. B. (2001). The Disease to Please: Curing the People-Pleasing Syndrome. McGraw-Hill.
Forward, S., & Frazier, D. (1997). Emotional Blackmail: When the People in Your Life Use Fear, Obligation, and Guilt to Manipulate You. HarperCollins.
De Botton, A. (2004). Status Anxiety. Vintage Books.
Foucault, M. (1975). Surveiller et punir. Paris: Gallimard. [『감시와 처벌』 한국어 번역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