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검열과 방어적 설명의 피로

by 지여다


모든 말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모든 표정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 말의 주인이 아니라 감정의 경비원이 된다. 이들은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 ‘이 말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진 않을까?’, ‘지금 내 표정이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를 더 우선하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스스로를 제한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자기검열(self-censorship)이라 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개인이 외부의 강제 없이 스스로의 발화를 억제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는 불안, 배제에 대한 두려움, 반복된 지적과 부정적 피드백의 결과로 자리 잡는다. 올리비아 레메스(Olivia Remes)는 BBC 라디오 방송에서 불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타인을 불쾌하게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말을 머릿속에서 검열하고,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말이 상대에게 미칠 영향을 과도하게 걱정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결국 자기표현의 억제와 정서적 소진(emotional exhaustion)을 유발한다 (BBC Radio 4, 2017).

이런 자기검열은 단지 성격적 예민함이나 사회적 배려의 차원이 아니다. 사회심리학자 엘리자베트 노엘-노이만(Elisabeth Noelle-Neumann)의 '침묵의 나선 이론(Spiral of Silence)'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를 두려워하는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라고 판단할 경우 침묵을 선택하게 되며, 그 결과로 사회적 침묵이 강화된다. 이는 결국 개인이 더 이상 안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구조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기검열은 종종 자기체계(self-schema)와 외부 통제 스키마(external control schema)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헥티 마커스(Hazel Markus)는 자아가 반복된 사회적 경험을 통해 특정한 자기 스키마를 형성하게 되며, 이 스키마가 이후의 정보 처리와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관계 속에서 자신이 반복적으로 오해받거나 지적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감정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식의 자기 스키마를 구축하게 된다. 여기에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외부 통제 위치(locus of control)'가 강하게 작용하면, 타인의 해석과 감정 반응이 곧 내 자아의 안전과 직결된다고 믿게 된다.

결국 자기검열은 방어적 설명(defensive explanation)으로 이어진다. 이는 잭 기브(Jack Gibb)가 말한 방어적 커뮤니케이션(defensive communication)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언어적으로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되며, 이는 관계의 진정성과 신뢰를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예컨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상황에서도, “그게 싫다는 건 아니고요…”라는 말로 사족을 붙이고, 감정을 표현할 때에도 “제가 기분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감정을 희석시킨다. 이러한 설명은 진심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오해를 피하고 상대의 감정을 관리하려는 회피적 전략으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말은 점차 힘을 잃고, 감정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종종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개념과 연결된다. 반복적으로 자신의 감정이 왜곡되거나 무시당한 경험을 한 사람은 결국 표현의 시도를 포기하게 되며, 그로 인해 자기 검열은 더욱 심화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말 앞에 방패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 뒤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감정과 경계를 선명하게 표현하고, 그 감정이 나의 것임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검열 없는 말하기의 시작이다.

때로는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 “이건 제 입장입니다. 다르게 보셨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혹은 “그 말이 불편하셨을 수도 있지만 그 불편함은 제 책임이 아닙니다.” 이런 문장들은 타인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신뢰할 때 나오는 용기다. 설명 없이 말할 수 있는 힘은 내가 나를 신뢰한다는 증거이며, 자기 존중감의 실천이다.

관계 안의 진짜 피로는 갈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조절해야 하는 긴장이다. 우리는 이제 피곤한 설명 대신, 짧고 선명한 문장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자기 검열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를 지켜내는 언어의 시작이 될 것이다.





Remes, O. (2017). The Anatomy of Anxiety. BBC Radio 4.

Noelle-Neumann, E. (1974). The Spiral of Silence: A Theory of Public Opinion. Journal of Communication, 24(2), 43–51.

Markus, H. (1977). Self-schemata and processing information about the self.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5(2), 63–78.

Gibb, J. (1961). Defensive Communication. Journal of Communication, 11(3), 141–148.

Seligman, M. E. P. (1975).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Fr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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