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때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논리적이지 않거나, 비이성적이거나, 나약하다는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나쁜 것인가? 분노는 나쁘고, 슬픔은 약하며, 기쁨은 긍정적인 걸까?
감정은 그렇게 가치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판단이 아니라 신호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감정은 지금 이 순간의 내 상태를 가장 정직하게 알려주는 정보다.
그렇다면 왜 감정적인 사람이란 말이 부정적인 평가를 암시하게 되었을까?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바로 반응하는, 감정에 ‘끌려다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
반대로, 감정을 하나의 정보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은, 감정으로부터 선택권을 얻는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우리는 곧잘 그것들을 평가한다. 화내는 건 미성숙하다고 여겨지고, 슬퍼하는 건 약하다고 받아들여지며, 밝고 긍정적인 감정만이 환영받는다. 이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느라 진짜 중요한 감정 해석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불쾌함은 누군가 내 경계를 넘었다는 신호고, 무기력함은 내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경고다. 짜증은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받지 못하고 있다는 알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신호를 너무 자주 무시하거나 미처 내 상태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지나치게 빠르게 반응해 버린다.
감정을 다룰 때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무시해야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솔직하다는 식의 이분법이다. 하지만 이 둘은 모두, 감정의 진짜 기능을 놓치게 만든다.
감정은 억제할 대상도 아니고, 곧장 행동으로 옮겨야 할 명령도 아니다. 진짜 필요한 건 감정을 해석하고 사고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지금 나는 불안하다”라는 느낌이 올라올 때, 그것을 그냥 두려움으로 몰아가거나 무시하지 않고, “이건 내가 확신이 부족하다는 뜻이구나”처럼 생각의 문장으로 바꿔보는 짧은 변환 과정 하나가, 감정을 나를 위한 언어로 만들어준다.
“감정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감정은 환경적 도전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알려주는 신호로 기능한다.” 폴 에크만, 감정의 진실(Emotions Revealed)
감정이라는 언어를 나를 이해하는 도구로 바꿀 수 있을 때, 감정은 더 이상 우리를 침식시키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분노하며, 누군가는 침묵한다. 이 차이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해석의 구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 생각과 기질의 차이 등이 그런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감정은 나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감정은 때로 아주 오래된 기억, 반복되는 패턴, 나도 잘 알지 못했던 기대처럼 나의 무의식과 내면을 반영한다.
이런 것을 알게 되면, 감정을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되, 내 감정이 말해주는 나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나의 경계를 지키는 힘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하나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 우리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수전 데이비드, 감정 민첩성(Emotional Agility)
감정은 그 자체로는 나를 흔드는 바람이지만, 그 바람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결국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Ekman, P. (2003). Emotions revealed: Recognizing faces and feelings to improve communication and emotional life. New York: Times Books.
David, S. (2016). Emotional agility: Get unstuck, embrace change, and thrive in work and life. New York: Av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