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공감이 나를 침식할 때

by 지여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며 반응하는 정서적 연결의 형태다. 단순한 동정이나 이성적 이해가 아니라, 상대방의 내면 상태에 정서적으로 이입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은 물론, 인간과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동물들 또한 이런 감정 이입의 신호를 교환하며 서로 정서적 유대를 쌓는다. 문제는 이 능력이 항상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공감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관계를 따뜻하게 만든다. ‘공감 능력이 높다’는 말은 인간적인 성숙과 사회성의 지표로 간주되며, 종종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모든 공감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어떤 공감은 나를 갉아먹고, 어떤 이해는 나를 소모시킨다.
특히 감정적 흡수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화된다. 친구의 아픔을 듣고도 나까지 하루 종일 기운이 없고, 가족의 좌절을 들은 후 내 삶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정서적 경계 붕괴다. 이때의 공감은 자신의 자아 경계를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공감은 단지 감성적인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감정은 타인에게 전염될 수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감정 감염(emotional contagion)이라 부른다. 이는 한 사람의 감정 상태가 비언어적 신호(표정, 억양, 제스처 등)를 통해 주변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이되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거울신경계가 작동하면서 우리는 타인의 감정 표현을 모방하고, 그에 따라 실제로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마치 바이러스가 퍼지듯, 감정도 복제되고 확산된다.
예를 들어, 가족 중 한 사람이 불쾌한 표정으로 하루 종일 한숨을 내쉬면, 이유를 몰라도 나머지 가족들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병실에서 우울한 환자 곁을 지키던 간호사가 하루가 끝날 무렵 이유 모를 정서적 피로를 느끼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처럼 감정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공감은 선택적이어야 한다.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되, 그 고통을 내 감정처럼 끌어안지 않아야 한다.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방어의 부재다. 공감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감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공감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차가운 마음이 아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 전염에 더 취약하게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Simon Baron-Cohen 교수팀은 유전적 요인이 공감 능력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들의 대규모 유전 연구에 따르면, 인구 중 약 10-15% 정도는 타고난 공감 민감도가 높은 사람들(high-empathizers)이다. 이들은 감정 감염에 더욱 취약하며, 정서적 고통에도 더 쉽게 노출된다. 연구는 또한,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자폐 스펙트럼이나 정서적 과잉반응과의 연관성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셰필드 할람 대학교의 Diarmuid Verrier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성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과잉 공감(hyper-empathy)’을 경험한다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맥락에서의 공감 조절 능력이 부족하지만, 공감 자체가 결여된 것은 아니다. 그 결과 연구 참가자의 78%가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흡수해, 심각한 정서적 피로감을 호소했다. 공감의 부정적인 측면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감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타인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이지만, 그 능력은 또한 자신을 소모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자기 보호를 포기한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떠안는 착각을 부른다. 공감의 진짜 역할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공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Hatfield, E., Cacioppo, J. T., & Rapson, R. L. (1993). Emotional Contag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Warrier, V., et al. (2018). "Genome-wide analyses of self-reported empathy: correlations with autism, schizophrenia, and anorexia nervosa." Translational Psychiatry, 8(1), 35. https://www.nature.com/articles/s41398-017-0082-6
Kimber, L., Verrier, D., & Connolly, S. (2024). "Autistic People's Experience of Empathy and the Autistic Empathy Deficit Narrative." Autism in Adulthood, 6(3), 321–330. https://doi.org/10.1089/aut.2023.0001

keyword
이전 13화자리를 뜨는 것의 전략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