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인간관계에서의 이탈이나 단절을 ‘고립’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모든 단절이 곧 고립은 아니다.
고립(isolation)은 외부로부터의 비자발적인 단절이지만, 거리두기(distancing)는 자기 감각을 회복하고 관계의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하는 심리적 간격이다.
이 두 개념은 심리적·사회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차이를 혼동하고 고립되기 싫다는 이유로 거리 두기를 꺼리는 데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접촉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들은 모임과 대화, 사회적 만남을 통해서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며, 조용히 거리를 두는 사람을 ‘소외되었다’고 단정한다.
거리 두기를 불편한 침묵이나 비정상적 고립으로 오해하는 사람은, 관계란 끊임없는 교류로 유지된다는 믿음에 갇혀 있다.
이러한 태도는 타인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며, 결국 관계의 밀도를 강요하는 권위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심리학자 Irvin D. Yalom은 “고독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의미 있는 만남의 전제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자기 내면과 마주하는 고독을 감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리 두기는 바로 그 고독을 회피가 아닌 성찰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John Bowlby 역시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 개인일수록 관계 안에서 적절한 거리 조절에 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 사람일수록 일정한 심리적 간격을 조절할 수 있으며, 이러한 거리감이 오히려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거리 두기는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율 장치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소통과 연결을 미덕처럼 요구하지만, 모든 연결이 반드시 밀착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지나친 친밀감은 자율성을 침식시키고, 감정적 소진을 초래한다.
Sherry Turkle는 디지털 시대의 과잉 연결이 오히려 자아 성찰의 기회를 앗아간다고 말한다. 그녀는 『고독을 되찾다』에서, 건강한 대화를 위한 조건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힘”을 강조하며, 일정 수준의 ‘의도적 고립(deliberate solitude)’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 W. Winnicott도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the capacity to be alone)’을 심리적 성숙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유아가 안정된 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해 혼자 있는 상태를 견디는 능력을 길러야 이후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심리학은 거리 두기를 단절이 아니라 자기 보호와 성숙의 조건으로 해석한다.
진정한 관계는 적절한 간격을 조율할 수 있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오히려 과도한 밀착은 경계를 흐리고, 나와 타인의 개별성을 부정한다. 중요한 것은 ‘사이’의 공간, 즉 서로 구분되면서도 연결되는 심리적 틈이다. 이 틈이 유지되어야 관계는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거리 두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거리를 인식하고 유지하는 능력은 자율성의 핵심이며, 관계 속 자기 소멸을 막는 중요한 기술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까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온전하게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다.
Yalom, I. D. (1980). Existential Psychotherapy. Basic Books.
Bowlby, J. (1988).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Turkle, S. (2015). Reclaiming Conversation: The Power of Talk in a Digital Age. Penguin Press.
Winnicott, D. W. (1958). The capacity to be alon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39, 41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