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계 속에 나를 침식시키지 않는다

by 지여다


어떤 관계는 나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든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감정을 억제하고, 갈등을 피하려고 침묵하며,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참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이 사라진 느낌을 받는다. 그런 관계를 지속하면, 자아는 흐려지고, 타인의 기대나 해석이 나를 대신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단번에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 되려는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타인의 말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문제 삼지 않았고, 무례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으며, 지나친 책임이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참고 넘겼다. 그렇게 반복되는 유예와 침묵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아닌 무엇인가로 살아가게 된다.


자기 침식(self-erasure)은 반복되는 자기 축소와 순응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흐려지고 관계의 구조 속에 묻혀버리는 과정이다. 내가 무언가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감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굳어질 때, 관계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방향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그것을 허용한 것은 나 자신이다.


심리학자 Harriet Lerner는 관계에서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할 때, 우리는 실제로 친밀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진실을 잃게 된다고 말한다. 말하지 않음은 종종 존재의 소외로 이어진다.


Erving Goffman도 과도한 역할 수행이 자아 침식의 구조적 조건이 된다고 보았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특정한 ‘태도’를 연기할 때, 자아는 점차 주변화된다.


우리는 관계에서 존중받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을 존중하는 방식을 정해야 한다. 그 존중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 거리를 설정하는 태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허락하는 행위로 구체화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존중받기를 바라는 태도는, 현실의 구조 속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은 권리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판에 주눅 들지 않고,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때로는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관계의 구도에서 누군가가 나를 수단화하거나 과도하게 소모하는 흐름은 조정되어야 한다.


Kristin Neff는 자기 존중은 타인을 대하듯 자신을 대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존엄은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용한 경계의 총합이다.


경계 없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연결은 일정한 심리적 간격과 책임의 분배 위에서 작동한다. 그 간격이 무너질 때, 안타깝게도 더 유연하고 더 참는 쪽이 약자가 되어 버린다.


존엄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시작된다.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는 관계 속에서도 나를 침식시키지 않겠다. 나를 지키는 일에는 타인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누구도 당신을 침식시킬 권리는 없다.


Lerner, H. (1989). The Dance of Intimacy. Harper & Row.


Goffman, E. (1967). Interaction Ritual: Essays on Face-to-Face Behavior. Anchor Books.


Neff, K. (2011). Self-Compassion: The Proven Power of Being Kind to Yourself. William 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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