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준비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사하에게
안녕하세요, 사하님.
그간 많은 일이 있었어요. 사무실을 어렵게 구하자마자 사정이 생겨, 얼마 안 돼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슬퍼지기도 했고요. 지난 6월 초에는 그 유명한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 쇼핑도 했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아빠 사무실에 놀러 갔는데, 아빠가 잠시 나가 있던 지라 먼저 도착해서 요리저리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책상 위에 있던 아빠 수첩에 이런 말이 적혀 있더라고요. ‘원전주’, ‘SK화학’, ‘두산중공업’… 그때 문득, 아빠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다시금 깨달았죠.
저희 아버지는 여러 기업과 대학에 화학 약품과 관련 도구를 가져다주는 일을 하고 계세요. 쉽게 말해 ‘물류’ 쪽 일이죠. 언제 어떤 물건을 요청할지 모르니, 사무실 한쪽에는 각종 화학약품과 도구들이 담긴 박스로 가득하답니다. 한동안은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까먹고 있었는데, 수첩 속 내용을 보고 왠지 보지 말아야 할 걸 본 느낌이 드는 거 있죠. 자발적 환경운동가인 딸과 화학 약품을 납품하는 아버지라니.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엄마랑은 어떻냐고요? 엄마는 여성으로서 자기가 겪었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서는 매우 분노하고, 제가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세요. 하지만 제게 “남편이 생기면 그때 널 넘겨야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시기도 합니다. “역시 딸이 최고야”라거나, “쟤는 남자 맞니? 흐느적대는 게 계집애 같다”라거나, “쟤는 너무 못생겼다”는 말을 툭툭 뱉기도 하죠. 하하호호 웃다가도 그런 얘기가 나오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관계입니다.
식사를 할 때는 정신이 혼미해요. 채식을 하고 비건을 지향하는 제 앞에서 게걸스럽게 백숙을 먹으며 육즙을 평가하신다거나, TV 속 먹방 장면을 보며 회는 선어니 숙성이니 이런 말을 하시기 때문이죠. 식사를 따로 하겠다고 말하면, “우리는 가족인데 어떻게 따로 식사를 할 수가 있냐”는 말씀을 하세요. 얹혀사는 입장이니 할 말이 없습니다만, 가끔은 그런 그들이 사무치게 싫어요.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나름의 생활 방식인 건데(심지어 나도 저랬던 적이 있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 자신도 싫고요.
사하가 지난 편지에서 말했죠. “제가 저의 자리에서 파이팅하다 보면 언젠가는 상상도 못 했던 사람과 만나 함께 파이팅 할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라고요. 어쩌면 전 그게 아주 가까운 존재, 그러니까 제 모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딸이 최고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엄마를 파이팅 할 수 있을까. 원전을 비롯해 여러 화학 기업에 밥벌이가 달린 아빠를 파이팅 할 수 있을까. 언젠가 그들과 함께 비거니즘 파이팅을 외칠 수 있을까(이건 정말 상상이 안 가네요).
해보지도 않았는데 상상만으로도 벌써 싫어요. 솔직히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납니다. 저는 제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좋다거나 싫다는 감정을 크게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들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더 뻔뻔하게 제 목소리를 외치고 다닐 수 있었어요. 해볼 테면 해봐라,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거. 이런 생각으로요. 그 대신 나와 가까운 사람들, 특히 제가 아끼고 신뢰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들과의 간극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꼈어요.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뜻 뭐라고 말할 수 없어서 괴로웠죠. 그래서 저는 엄마, 아빠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싫었어요. 미웠어요. 각종 언론 매체에서 보도하는 날 선 뉴스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에 더 큰 상처를 받았죠.
그러다 최근에 이런 말을 들었어요.
“버스를 탔는데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는 여성 분이 있었어요. 매니큐어 냄새가 나서 너무 싫었는데, 만약 내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사랑스럽게 그리고 싶은 인물인 거예요. 그렇게 보니까 싫은 사람이 없어요. (..) 다르게 말하면 연민을 갖고 생각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만약에 누가 너무 미우면 그냥 사랑해버려요.”
가수 이효리가 나오는 <서울 체크인>이라는 예능에서 들은 말인데요. ‘연민’이라는 단어가 귀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사실 저는 연민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거든요. 연민은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긴다는 뜻이잖아요. 거기서 위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근데 저 말을 듣고 나니 연민이든 공감이든, 무언가를 느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내 감정의 주체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아 내가 저 사람을 싫어하네, 그럼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미워할까? 사랑해버릴까? 욕해버릴까? 파이팅할까? 내가 내 감정을 인식하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선택한다는 게,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싫어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감정인 거 같아요.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건 그냥 좋음 그대로를 즐길 때가 많은데, 싫어한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에는 엄청 적극적이게 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귀찮고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을까 골똘히 고민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은 꼭 기억해뒀다가 주문 선상에서 제외하는 것처럼요.
엄마 아빠가 싫어질 땐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기후위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어쩌면 싫어하는 이유에 답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제 마음을 파헤쳐봤어요. 나는 왜 종종 엄마 아빠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는지요. 지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나를 지키고 싶다. 내가 옳다고 믿는 걸 존중받으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요.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를 싫어하고 있었죠.
그래. 그 마음 하나 지키기 위해 억척스레 살아온 환경과 세월이 저들을 저렇게 만든 거겠지. 내가 저들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만큼 저들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제 외로움이 조금은 사그라들어요. 나라고 별 다르지 않구나 싶어서. 게다가 오히려 더 열심히 살게 되더라고요.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더 날뛰고 생색내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래야 저 편에 있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쳐다볼 테니까. 그게 대화로 이어지면 더 좋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연한 마음이 들었죠.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길고 긴 이야기를 거쳐 사하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좋음이든 싫음이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라는 거였어요. 특히나 피하고 싶은 감정들 있잖아요. 증오, 미움, 싫음... 이런 감정들을 파헤치다 보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람과 함께 파이팅 할 수 있는 날이 더 가까워질 거란 생각이 들어요.
비가 살짝씩 오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요즘이에요. 혹시 모르니 우산 잊지 마시고요. 남은 시험 잘 마무리하고 곧 만나요!
2022년 6월 19일
키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