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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달리기 Jun 29. 2022

착해지지 말고 자유로워집시다

틀리지 않은 키키에게


안녕하세요, 키키님. 시험에서 해방된 사하입니다.


종강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생각만큼 홀가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열심히 매진하던 일이 뚝 끝나버렸을 때 허탈함이라고 할까요. 조용하고 다급하게 가라앉는 마음을 붙드느라 기력이 닳는 요즘입니다. 종강과 함께 희망이 올 줄 알았더니 참, 인생은 어렵네요.


편지 잘 읽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좋고 사람이 너무 싫은 일에 대해 먼저 질문해놓고, 엄마 아빠를 싫어한다는 답을 받아 사실은 적잖이 당황했어요. ‘사람’으로 뭉뚱그린 저의 물음에 아주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까요.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은 무서운 거 아세요? 그런 사람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까지도 골똘해지게 만들거든요. 이야기를 듣는 저까지도, 제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게 되거든요. 당신은 제게 늘 어려운 숙제를 다정히 건네주십니다. 그 점이 좋지만요.


아끼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홀로 상처받은 기억은 제게도 더러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여성들은 모두 그런 기억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나의 몸을 평가하는 가족의 언어에 분노하고, 차별이 차별인 줄 모르고 옹호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실망한 기억이요.


분노와 실망의 대상이 여성일 때 무력감은 배로 불어나죠. 너만은 나를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감이 존재하니까요. 기대가 어그러지면 미움과 함께 질문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가 왜 사랑하는 사람을 밉게 만드는 걸까. 점점 더 예민해지면서 내 세계는 넓어지는 걸까 좁아지는 걸까. 연대하자고 외치는 나는 왜 외로운 걸까. 내가 잘못된 걸까. 내가 틀린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퍽 쓸쓸한 물음들이죠.


질문들에 답하고자 여러 시도를 해보았는데요. 잔뜩 날을 세운 채 화내고 따지고 싸우기도 했고요. 입을 가만히 다물고 웃어넘기기도 했습니다. 솔직해지자면, 싸우고 맞서는 것보다 조용히 넘어가는 쪽을 더 자주 선택했어요. 상처 받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무서우니까요. 우리 여자들이 좀 그렇지 않나요. 얌전히, 착하게, 순하게. 그런 말들이 뼈와 살에 스며들면서 자라나잖아요. 누군가를 상처주기보다 스스로 상처내고, 악 쓰고 바락바락 화내느니 차라리 혼자가 되는 것이 쉽죠. 나를 이해해달라고 외치다 엉망이 되느니 적당히 착해지고 사랑받는 편이 가성비가 좋으니까, 하며 스스로 설득하고 미움을 삭이곤 하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설득은 안 통합니다. 욕망이 생기니까요. 사랑받고 싶은 욕망만큼이나, 스스로 떳떳해지고 싶은 욕망.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 당신이 바라는 나는 내가 아니라고 고백하고 싶은 욕망. 내가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 내가 선택한 것들로 삶을 꾸리고 싶은 욕망. 착해지기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 욕망들이 커지고 커질수록 미움도 커져가죠.


어쩌면 미움이라는 감정은 저에게, 착하게만 자라온 여성들에게 중요한 지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라도 지키고 싶은 ‘나’라는 게 생겼다는 지표, 내 삶에서 내가 중요해졌다는 지표, 모두에게 솔직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표요.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미움은 누군가를 해치거나 배제하지 않고 함께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고 싶은 욕망은 반대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때만 충족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와 함께할 미래를 전제로 한 미움은 언제든 사랑으로 둔갑할 묘수를 품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저번 편지에서 보여준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묘수를 찾아내는 과정은 괴롭기도 해요. 미워하는 일이 버거워 다시 미련하게 착해지고 싶을 때도, 진심을 숨기는 일이 비겁해 마구 내지르고 싶을 때도 있겠죠. 오락가락하는 과정이 지긋지긋해서 그냥 스스로를 혐오하고 싶기도 하고요.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이 막 밀려올 때, 저는 주문을 겁니다.


내가 맞아. 나는 이래도 돼. 나는 이상하지 않아. 나는 틀리지 않았어.


그러니까, 어떤 선택도 괜찮아요. 그게 당신이 한 선택이라면요. 다정해지고 싶은 만큼 다정해지고 단호해지고 싶은 만큼 단호해지세요. 때로는 이편에, 때로는 저편에 서도 돼요.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날엔 싸우지 않아도 되고 참고 싶지 않은 날에는 화를 내도 돼요. 누군가 우리더러 시끄럽다고 너무 예민하다고 착하게 굴라거나 더 싸우라고 비겁하다고 나약하다고 말하면 콧방귀를 끼고 대꾸합시다. 내가 맞아. 나는 틀리지 않았어. 그렇게 착해지지 말고 자유로워집시다. 미움이 사랑이 될 묘수를 찾아낼 때까지.


오늘의 편지는 제가 좋아하는 시로 맺어보려 합니다. 나를 내버리고서라도 착해지고 싶은 마음이 밀려올 때, 그런 마음을 품은 미련하고 다정한 여성들을 볼 때 잠잠히 새겨보는 시예요. 시의 아름다움으로 편지의 어설픔을 무마해보려는 시도 맞고요. 남의 글을 빌어 은근슬쩍 당신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은 마음도 맞습니다. 부디 귀엽게 봐주시길. 그럼 다음 편지를 기다리겠습니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보렴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 가운데라고


-메리 올리버, <기러기>


2022.06.28. 사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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