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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달리기 May 29. 2022

사하의 반경 5미터엔 무엇이 있나요?

작은 도약의 힘을 믿는 사하에게

안녕하세요 사하, 처음 사하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가 4월 말인데,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어느덧 초여름이에요.


저는 요즘 사하와 편지를 주고받아서 그런지, 편지 자체에 관심이 부쩍 많아졌어요. 다른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궁금해서 찾아본다거나, 편지 형식의 글을 발견하면 눈을 반짝이며 읽어보는데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바로 ‘어설픔'이에요. 사람들의 편지에는 누군가의 진심이 어설프게 담겨 있어요. 이거 말했다가 저거 말하기도 하고, 근래에 있었던 일을 두서없이 나열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 어설픔은 신기하게도 마치 여백 같아서, 상대방이 나머지를 채울 수 있는 틈을 줘요. 이제까지 어설픔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는데 편지에서는 어설픔이 무기가 된다니, 참 신기합니다. (일본 우체국의 슬로건이 “편지라면, 어설픔도 무기가 된다”래요!) 저도 어설프지만 사하의 편지를 보고 든 생각을 두서없이 써볼게요.




저는 지난 사하의 편지를 보고 뭐랄까, 소름이 끼쳤어요. “도대체 왜 이 죽음을 못 멈추는 겁니까"라는 문장이 두 번 나오는 걸 보고서는 잠시 동안 머리가 멍해지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였어'라는 생각에, 발끝부터 소름이 퍼졌죠. 그렇지만 사하가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해지기도 합니다.


문득 저는 사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어요. 사하의 반경 5미터엔 무엇이 있었길래, 그러한 시선을 갖게 되었나요? 사람은 반경 5미터에서 본 것들을 바탕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해요. 지금의 사하를 있게 해 준 사람들, 순간들은 무엇이었나요? 저와 사하는 분명한 시선의 다름이 존재하는데, 저는 그 다름의 기원이 궁금해졌어요.


잠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자면, 저의 반경 5미터에는 쓰레기가 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알아차리고 들여다본' 반경 5미터의 존재였죠. 3년 전, 학교 쓰레기통에 산처럼 쌓여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을 보고 처음으로 문제를 느꼈어요. 이렇게 많은 쓰레기들이 모여서 다 어디로 가나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는데, 그때 환경문제와 기후위기를 알게 된 거죠. 제가 한 번 빠지면 계속 그것만 파는 성격이라, 책이랑 다큐를 계속 찾아본 거예요. 문제를 알게 될수록 더 많이 알고 싶었고, 문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게, 저는 제가 이 일을 할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제 지인들도 가끔 저를 보면 프리랜서가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쪽인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곤 해요. 어쩌면 3년 전 제 반경 5미터에 그 쓰레기통이 없었다면, 지금쯤 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드라마 <반경 5미터>


이쯤 되면 궁금한 게 생길 텐데요. 왜 하필 ‘반경 5미터'인지 말이에요. 실은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제목이에요. <반경 5미터>, 쓰라는 대로만 기사를 써왔던 주인공이 어느 베테랑 선배 기자와 함께 취재를 하며 차츰 자신만의 기사를 찾아가는 휴먼 드라마죠. 일본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주간지가 아직은 꽤 팔리고 있는데, 주간지의 매출을 담당하는 건 짧은 스캔들 기사라고 해요. 단 몇 쪽짜리의 가십 기사가 매출의 80%을 차지하는 바람에 루머와 스캔들을 다루는 팀은 1팀으로, 그 밖의 생활 정보를 다루는 팀은 2팀으로 밀려나죠.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1팀에서 일하다가 치명적인 실수로 2팀으로 부서가 이동되는데요. 억지로 기사를 써왔던 주인공이지만, 베테랑 선배와 함께 발밑 '반경 5미터', 즉 가까이 있는 일상을 들여다보며 차츰 자신만의 기사를 쓰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중에서 제 마음을 크게 움직인 대사는 이거예요.


“난 일부러 과격하게 말하는 거야. 평가도 동정도 필요 없어.
난 말이야, 진심으로 화내고 있어.
이도 저도 아닌 얘기해봤자 분노는 전해지지 않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우리에겐 다시 시작할 기회가 필요해.”


이 말을 듣고 난 후에는 스쳐가는 사람들의 반경 5미터를 상상하게 돼요. 지하철 역에서 이동권 시위를 하는 저분들의 반경 5미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미류와 종걸 씨가 본 반경 5미터는 어땠을까. 제가 봐온 반경 5미터와 사하가 봐온 반경 5미터도 분명 다를 거예요. 자신이 밟힌 방법과 그 횟수에 따라 각자 다른 시선을 갖게 되는 거죠.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뉴스와 기사에 나오는 당사자들이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내가 그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사하가 제 반경 5미터에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와 가까이 있는 사하가 저한테 이민호 군과 임종린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기에 제가 그들을 알 수 있었고, 연대할 수 있었죠. 반경 5미터라는 게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나' 중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반대로 무한히 확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무도 두고 가지 않는 세상을 꿈꾸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와 댓글들을 보면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요즘이에요. 역시 인생은 혼자인가 싶다가도,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어떻게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나 회의가 들기도 하죠. 때로는 내가 느끼는 것이 마치 나만 그런 거 같아서 외롭기도 해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혼자서 보고 감내하는 일은, 그저 느끼는 것만으로도 무겁고 버거운 일이니까요.


저는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하고, 쉽게 취약해지는 편이라 번아웃도 자주 오고 우울감이 시도 때도 없이 오는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해요. 그런 다음 온몸의 감각을 깨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발견’하고, 입 밖으로 내뱉죠. “나랑 눈싸움하는 까치!”, “어.. 저건 종류가 뭔지 모르겠는데 푸른 나무!”, “졸졸 흐르는 하천!”, “비둘기가 싸지른 똥!”… 그러다 보면 불평등과 차별, 학대 기사를 보고 혼잡해진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더라고요.


결국은 나의 반경 5미터를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건강을 살피고, 이웃을 만나면 인사하고, 동네를 산책하며 풀과 새들을 관찰하고… 일상적이고 가까운 것들을 소중히 대하는 거죠. 혹시 몰라요. 반경 5미터를 돌보다 보면 그런 나를 본 친구가 덩달아 자신의 반경 5미터를 보살피고, 그걸 본 또 다른 친구가 따라 하고 … 그렇게 무한히 확장하게 될 지도? 사하가 말했던 것처럼, 변화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 옆의 작은 도약들로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행복하게 배부른 얼굴을 한 듯한 기사를 보며 착잡한 마음을 가졌을 사하에게, 오늘 제가 소개한 드라마를 조심스레 추천드려요. 자본의 논리가 판치는 언론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기사를 쓰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저희도 그들 중 하나일 테고요.


그럼 사하의 반경 5미터 이야기를 기다리며,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22.05.28

키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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