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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달리기 May 18. 2022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라질 거예요

함께 노력하며 살고 싶은 키키에게

안녕하세요 키키님.


저의 시험 기간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졸업반의 배짱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성적과 건강을 그렁저렁 건사할 수 있었어요.


한 번 말씀드리긴 했지만, 키키님의 답장은 저의 묵힌 피로를 싸악 풀어주었답니다. 메일이 도착한 밤 저는 과제를 처치하기 위해 죽은 눈으로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는데요. 이 말이 저 말인지 저 말이 이 말인지도 모르게 문장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키키님의 편지를 읽으니 그 언어들이 착착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참 신기하죠. 누군가의 진심이 담뿍 담긴 글을 읽는 일은 생각보다 더 드물고 귀중한, 삶을 견디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경험 같습니다. 저를 위해 용기 내어 실패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실패를 자주 이야기하자는 제안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타인에게 고백할 수 있는 순간부터 실패는 실패가 아니니까요.


말과 글과 삶이 유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제게도 존재합니다. 키키님이 비건 vegan 생활을 택하신 것도,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시는 것도 ‘쓴 것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리라 생각해요. 어쩌면 저희는 그 마음으로 이렇게 만나 연결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쓴 것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늘 기꺼운 감정만을 선사해주진 않아요. 오히려 자학(自虐)에 점령당해 시름시름 앓는 순간들이 태반일 겁니다. ‘옳은 말에 얼어붙었던’ 키키님의 경험처럼 말이죠. 권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권리 없는 생활을 모르고, 연대의 아름다움을 써대면서 연대의 경험이 부재한 나를 발견할 때. 내가 한 말이 그저 '말'에 불과하고 내가 쓴 글이 그저 '글'에 불과할 때 삶은 그것들에 지배당해 얼어붙죠. 저 역시 무수히 많은 ‘얼어붙음’의 기억들과 ‘나는 글러먹었다’는 절망의 파동을 지나왔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그 굴레를 전전하다 지칠 때는 그냥 기만하며 살고 싶기도 해요. 어차피 인간이란 족속은 그런 것, 하면서 음침하게 합리화할 때도 종종 있죠.


그러나 뻐팅기며 합리화해도 얼어붙음의 순간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옵니다. 최근 저를 얼어붙게 한 것은 ‘몸’인데요.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38일째 단식 중인 미류, 종걸 씨의 몸은 하루하루 메마르고,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차별 없는 노동 현장을 위해 SPC 본사 앞에서 52일째 단식 중이던 파리바게트 지회장 임종린 씨는 심각한 건강 악화로 5월 18일 오늘 단식을 중단하셨죠. 이 땅을 차지하는 그들의 몸은 점점 그 부피가 줄어드는데, 그 몸을 통과한 그들의 ‘말’은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아요. 그 존재감은 저를 얼어붙게 합니다. '밥 먹을 권리', '노동할 권리'를 말로만 말하며 배부르게 앉아있는 저를 얼어붙게 합니다.


다른 의미로 저를 얼어붙게 한 말들도 있는데요.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인터넷에 ‘SPC’를 검색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뉴스 제목들이 줄줄이 이어지더군요.


SPC그룹, 인도네시아에 파리바게뜨 3개점 오픈…7개로 늘어(연합뉴스)

128만원짜리도 5분 만에 '품절'… 포켓몬 인기 어디까지(매일경제) 

포켓몬빵에 웃은 SPC삼립 실적…“2분기가 더 좋다”(뉴시스) 

‘포켓몬빵’ 다음은 아이스크림?…‘배스킨라빈스’도 완판(이데일리)

... 


종걸, 미류, 임종린 씨가 '몸'으로 말한 말들은 저를 '진실'로 얼어붙게 하지만, 저 기사 제목들이 말로 하는 말들은 '거짓'으로 저를 얼어붙게 해요. 후자의 말들로 얼어붙어 버린다면 말에 갇혀 영영 깨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요. 거짓으로 굳어버린 아름다운 세계에서 영원히 멈춰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지난해 봄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스물세 살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재훈 씨의 인터뷰 기사를 며칠 전 읽었는데요. ‘뉴스를 틀면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만 있지 사업주가 구속됐다는 소식은 없다’며 끝까지 싸울 거라던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 죽음을 못 멈추는 겁니까.”


행복하게 배부른 얼굴을 한 듯한 기사들에게, 저를 진실로 얼어붙게 한 단단하고 메마른 몸들을 보여주며 저 물음을 연거푸 들려주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이 죽음을 못 멈추는 겁니까.      


도대체 왜 이 죽음을 못 멈추는 겁니까.     


“말이 삶에 밀착하고 (...) 무엇보다 자기 말이 자기 삶에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때에야 옳은 말은 비로소 옳은 말이 된다.”(고병권, <묵묵>) 인용해주신 문장처럼, 한 번 '진실로' 얼어붙고 나면 우리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얼어붙은 조각들이 살에 스미고 뼈에 스며서 ‘삶’으로 녹아들면 그때부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모양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뻔한 말이지만, 우리 계속 노력해요. 계속 나아가요. 계속 살아요. 말과 글과 삶이 서로 친밀해지도록. 아무도 더는 메마르지 않도록. 죽지 않도록. 용기 있는 키키님은 멋지게 그 일을 함께해주실 거라 믿습니다.(이제 제게서 도망갈 수 없어요!)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산책 나가기 좋은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바람도 느끼고 마스크 밖으로 숨도 뱉으면서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같이 맞이해보아요.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2022.05.18. 사하 보냄.




참고 기사입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47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36196&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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