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은 몇 CBM일까?

가야금을 보내고 나서야 비워졌다

by 르르베

해외 이사 견적을 받았다. 회사 지원인 28CBM 대비 36CBM, 총 8CBM이 초과되었다. 짐을 줄이던지 30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일단 짐을 줄여보기로 했다.


옷장 깊숙이 숨어있던 가방들을 꺼내 놓으니 한숨부터 나온다. 매일 드는 건 정해져 있는데, 그때의 나는 무엇을 채우려 그렇게 샀을까.


분명 예전에는 필요해서 샀던 것들인데, 막상 정리하려고 보니 왜 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많다.


한동안 꽂혀 사 모았던 그릇, 냄비, 커트러리들은 미국에 가면 요긴하게 쓰이겠지 싶어 일단 남겨 둔다.


운동복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운동복을 사야 운동할 의지가 생기는 스타일이라 요가복, 필라테스복, 러닝복, 그리고 발레복까지 종류도 참 다양하다. 미국 가서도 운동은 하겠지 싶어 이것도 버리지 못했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물건과 함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버린다. 물건을 비울 때마다 마음도 아주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가져갈까 말까, 버릴까 말까 망설이는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물건을 버리다 보니, 결국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것까지 꺼내게 된다. 방황하던 대학 시절, 전공까지 고민하던 가야금.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당근에 팔았다.

실리콘밸리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추억이 몇 CBM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야금을 보낸 자리에 그만큼의 설렘이 채워졌다.


이제는, 물건 대신 경험으로 추억을 쌓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