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실패 2015년 8월호
경복궁 왼쪽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아담한 2층 건물이 나타난다. 낡은 간판에는 ‘보안여관’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다. 평소에는 갤러리로 쓰이는 조용한 건물이다. 그런데 이 날은 이른 오후부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부산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들을 담아 유·무형의 작품, 사물로 해석하고 만들어 판매하는 장, ‘인터넷 블랙마켓'을 준비하는 현장이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긴장의 요소들 가운데 ‘혐오의 재생산’과 ‘현혹 행위'에 주목했다. 인터넷은 혐오의 가장 큰 생산 기지이자 활발한 공급처이다. 단출한 칵테일 바를 만들고 ‘혐오 칵테일’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혐오 칵테일은 요즘 혐오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들을 골라 만들어 먹는 칵테일이다. 여자, 게이, 레즈비언이 어떻게 혐오의 아이콘이 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여자’ 베이스에 ‘스타벅스’를 섞어 달라고 주문하면 ‘된장녀 칵테일’이 완성된다. 2층 공간에 마련된 매대에는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물건들을 진열했다. 간판은 ‘인터넷 약장수'라고 달았다. 닦으면 인터넷이 빨라지는 모니터 클리너, 북쪽과 좌측만 가리키는 사파리 브라우저 모양의 나침반, 스마트폰에 콘돔처럼 씌우면 해킹을 막아주는 고무풍선 같은 아이템들이다. 제일 먼저 완판 된 것은 (번외 편으로 준비한) 여자들도 가볍게 들 수 있는 미니 생수통, 일명 ‘임금 평등의 잔’이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여자들은 정수기 생수통 교체도 혼자서 할 수 없으니 그만큼 임금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성차별 궤변을 풍자한 것이다.
한쪽에서 물고기가 부지런히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호랑은 알루미늄 쿠키 통과 망가진 우산을 해킹하여 만든 약장수 북을 메고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북을 쳤다. 도요는 인터넷을 잠시 내려놓는 명상의 시간을 재현하는 요가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구난방 한 우리의 작업들 만큼 다채로운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보며 그들의 문제제기에 맞장구도 쳤다.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나는 어떤 조류를 타고 어느 바다쯤에 표류하고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