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울린다. 페이스북으로 아만다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영상이 켜지자마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혜인! 무슨 일이야? 걱정했잖아!” A와 헤어지고 아만다에게 수 차례 메시지를 남겼다. 미국에 있는 아만다와는 시차가 엇갈려 대화가 이어지기 힘들었고 문자에 답이 왔지만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고마워.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아만다에게 A와의 일들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너한테 잘된 거야. 넌 네가 원하는 걸 제대로 알고 있잖아.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만다가 말했다.
아만다는 20살에 결혼을 하고 1년 만에 이혼을 했다. 그 이후 여행을 하며 일을 하고 짧거나 긴 연애를 한다. 가끔 아만다에게 결혼 생활이 어땠냐는 질문을 하면 아만다는 말했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어. 우리 둘 다 어렸지.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 떠났어.” 행복하지 않아서 떠났다. ‘행복’ 추상적이다. 누구나 바라는 것 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것 그래서 부재로 남는 것. 또한 누군가를 떠나기로 결심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그래서 외면할 이유도 많은 부분인 것 같다.
대단한 삶을 욕망하기보다 묵묵히 자신의 의지를 따르기로 결심했을 때 담담히 자기 삶을 살 수 있듯이, 대단한 연애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야 오히려 담담하게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 _곽정은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中
“요즘은 어떻게 지내?” 내가 물었다. “사실 2주 전에 데이팅 앱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어.” “어때?” “프랑스 남자야. 약혼자는 플로리다에 있고 장거리 연애로 오픈 릴레이션쉽을 하고 있어.” ‘오픈 릴레이션쉽’에 대한 통상적인 개념은 이렇다. 다른 사람들에게 누군가와 연애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또한 상대에게도 다른 상대와 연애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에 동의한다. “어젯밤까지 그 사람 집에서 같이 있었어. 며칠 전에 바에 가서 술을 먹는데 그 사람 약혼자한테서 전화가 왔어. 나랑 있다는 걸 숨기지 않고 말을 하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오직 두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 이 사회가 심어준 학습된 내용이 한 겹씩 벗겨지고 있다.
“이 남자가 애인이 있다는 걸 숨겼으면 나는 화가 날 텐데 처음부터 말을 해줘서 괜찮아. 내가 좋으면 만나는 거고 싫으면 안 만나면 되니까 관계에 있어 나에게도 선택권을 준거잖아. 아마 한국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겠지?” 아만다가 말했다. “아마도 바람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지” 내가 말했다. “관계도 선택이야. 사실을 알고도 유지를 하느냐 마느냐는 너의 선택이지. 상대가 거짓말을 하면 문제가 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리고 네가 좋다면 동의 하에 이루어진 거니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해.” 자신의 선택과 두 사람 간에 동의 그리고 이 둘은 존중이란 의미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어디에 있어?” 내가 물었다. “동생 집에서 지내고 있어.” 아만다의 동생 멜라니는 싱글맘이다. 2년 전 아이를 낳고 1년 전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는 걸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하나의 짐 가방과 그녀의 아들인 씨오를 데리고 남편을 떠났다. “멜라니는 어떻게 지내?” “일도 하고 연애도 하고 육아도 하고 정신없이 지내. 아, 멜라니가 집을 샀어! 너무 대견해. 그래서 다음 달에 새집으로 이사 가게 됐어.” “너도 같이 살아?” “아니, 내 집이 아니잖아. 잠시 있을 순 있는데 계속 이곳에 있기는 힘들지. 잠시 있다가 포틀랜드에 있는 친구에게 갈 거야.” 나의 것, 나의 집, 나의 인생 주체적인 삶의 필요한 것들이 한국에선 ‘우리’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묶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