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로망스
다음날 아침을 기약하며 잠을 청하는 하나의 이유는 오직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함이다.
악마의 눈처럼 쌔까만 커피에 입을 대기 시작한 것은 이십 대 중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떠난 캐나다 유학생 시절부터다.
홈스테이를 하던 곳은 반지하를 포함해 총 3층짜리 듀플렉스 목재로 된 전형적인 서민주택이었다.
그래도 손님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작은 정원도 딸려있었고 파트타임 간호사였던 홈스테이 주인장의 세 살 난 딸이 탈 수 있는 그네도 있었다.
내가 묵는 방은 다행히도 반지하지만 아늑하고 나름 환한 빛이 들어오는 지하 1층 전체였다.
욕실과 화장실 심지어 작은 주방까지 구비된 완벽한 원룸 스튜디오 형태의 공간이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1층으로 올라오면 홈스테이 마미가 커피머신 한가득 시커먼 커피를 한가득 내려놓고 식탁에 앉아 아침인사를 했다.
권하는 커피를 예의상 한 잔 따라서 마셨는데 세상에 이런 더럽게 쓴데 자꾸 콧구멍부터 향을 찾아 다시 마시게 되는 이상한 액체였다.
그때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에 찐한 커피 한 잔이 삶의 공식이자 매일 놓치면 안 되는 홍삼정 같은 것이었다.
운전대를 잡기 전 한숨을 고르며 벅스에 들어가 내가 만들어 놓은 내 음악들이 모여있는 앨범을 찾아내 전체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제야 온전히 혼자 남아 혼자 떠나는 일정이 시작된 기분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음은 급기야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었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가족이 아닌 오롯이 나만의 시간들로 이뤄진 세상으로 이끄는 내비게이션 목소리마저 반가웠다.
안전한 운전을 위해 우울증 약을 복용하진 않았다.
강원도까지 혼자 가는 운전에 졸음이 몰려올까 봐 절에 도착하자마자 먹기로 했다.
집에서 절까지는 일요일 오전 기준 2시간 반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템플스테이는 예약한 방이 비는 이틀만 일단 예약했지만 사실은 남편과 아들이 걱정되는 것도 작용했다.
내 고양이는 나 아니면 제대로 똥과 오줌을 치워줄 인간이 없고 그나마 잔소리를 해야 눈에 보이는 몇 덩어리 건져서 버리는 부자지간이라 더더욱 걱정되는 존재다.
고양이는 아이의 상담치료사가 권해 키우게 되었다.
아이가 밤에 잠을 못 자고 밤새 나와 남편을 괴롭히며 울부짖기 시작한 건 코로나가 시작되고 일 년 정도 후부터였으니 한 2년 전인 것 같다.
겨우 잠을 재우고 나면 우리 부부는 기진맥진해 남편은 침실에서, 나는 밤새 유튜브로 금쪽이들을 달래며 올바르게 키우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유튜버들의 말을 듣다 거실에서 잠이 들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놀이치료를 겸한 상담실 앞에서 기다리다 부모상담 시간에 선생님은 아이가 혼자여서 더 외로움이 크고 그래서 인형에 집착하는 양상을 보인다며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내 인생에 반려동물은 주변인들도 키우는 사람 하나 없을 만큼 생각하기도 싫은 귀찮고 냄새나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강아지는 무서워하는 아이와 함께 고양이를 보러 다니면서 나도 남편도 작은 유리상자에서 데려가 달라고 울어대는 여러 녀석들 중 한 녀석을 덥석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생각과는 반대로 아이는 고양이를 예뻐하는 방법보다는 본인을 싫어하며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고 그런 고양이를 감싸 안은 건 나였다.
태어나서 두 달 만에 우리 집에 온 고양이에게 거대한 엄마가 나로 인식되는 건 기분이 썩 좋은 일이었다.
아침에 거실에서 혼자 인간들이 나오길 기다리던 고양이는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애앵’ 거리며 어디선가 네발로 천천히 다가와 내 발목 주위를 부드러운 털로 가득한 머리로 비벼대었다.
그 반가움의 표시가 너무 사랑스러워 아침마다 방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고양이가 내게 다가오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 고양이는 내 기대에 부응하여 주었고 그렇게 따스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가 깰 때까지는…
벅스에 저장해 놓은 내 뮤직박스의 첫 노래는 “마리 앤트 메리”의 “공항 가는 길”이더라.
워낙 유튜브에서 마구잡이로 들려주는 재즈음악을 듣다 보니 정말 오랜만의 내 뮤직 플레이리스트와 만난 것이다.
‘그래, 어디 비행기 타고 여행 가는 기분으로 떠나보는 거야. 마치 처음부터 나 혼자였던 것처럼.‘
이런 생각이 들자 저절로 액셀을 밟는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