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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Jan 10. 2024

3. 자살이라는 로망

템플스테이 로망스


아이와 사이가 틀어진 이후부터였던가.

아니면 날 때부터 “자살”유전인자를 지니고 태어난 걸지도 모른다.

막내고모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시도를 했던 10여 년 전 사실이 떠오를 때면 더없이 자살이

내 운명처럼 느껴진다.

고모는 다행히 대학병원에 옮겨져 위세척을 하고 멀쩡히 퇴원했다.

그러나 동생의 자살기도를 접한 친오빠인 내 아버지는 고혈압 때문에 쓰러져 지금까지도 병원을 다니신다.

막내딸의 기구한 팔자에 가슴이 메어지던 그 애비, 할아버지는 몇 년 뒤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염을 할 때 막내고모는 비정상적으로 울며 이미 죽어 딱딱한 아버지를 온몸으로 안으며 죄송하다고 울부짖었다.


템플스테이를 할 장소가 가까워졌음을 울창한 소나무를 보며 감지했다.

입구에서 주차요원이 템플스테이 예약자는 더 들어가서 주차하라고 하는 말에 왜인지 모를 특권을 누리는 듯했다.

차를 주차하고 입실시간보디 세 시간이나 일찍 와버린 나는 매표소에서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려져 있는 걸 확인한 후 조촐한 보따리 같은 짐 하나와 가벼운 핸드백을 메고 절로 들어갔다.

가족끼리 와 본 적은 있지만 혼지 오는 낮은 알 수 없는 낯선 느낌과 불안감을 선사한다.


대웅전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냥 해보는 요식행위 같은 것이다.

쌩초보 불교인은 아니라는 듯.


템플스테이 사무소라고 적혀 있는 건물을 일부러 지나쳐 아무도 없는 절 뒤편 툇마루에 앉아 땀을 식혔다.

그리고 하늘 아래 펼쳐있는 울창한 숲들을 자세히, 나무 하나하나씩 눈에 넣어보기로 한다.


‘저 나무는 오르기가 힘들게 옹이 하나 없네 ‘

‘저 나무는 60킬로 정도는 견딜 수 없겠어’

‘저 나무는 사찰 멀리서도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되겠군’

‘아…. 저 오솔길로 올라 들어가면 뭔가 더 적합한 나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나는 “죽기 적합한”니무를 고르고 있었다.

산새들이 지저귀며 초가을 같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툇마루에 앉아 나는 그렇게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할만한 곳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산에서 목을 매달아 죽든 봉지를 쓰고 죽든 약을 먹고 죽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시체가 온전히 보전되어 발견됨이다.

너무 깊은 산 속이라 짐승들에게 뜯겨먹히다 만 채로 발견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등산객들이 많아서 못볼꼴 여러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도 않다.

그저 아이를 포함한 가족이 사는 공간의 반경에서 벗어나 내가 산에서 죽은 것조차 까먹어주는 게 최상이다.


나도 모를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열었다.

부재중 통화나 메시지는 없었다.

필시 남편이 아들에게서 핸드폰을 빼앗아 엄마가 혼자 있을 권리를 확보해주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이는 그런 아빠가 야속하고 그럴수록 더 내게

전활 하고 싶겠지.


미안한 마음보다는 홀가분하다는 기분이 들어 찰나의 죄책감에 더한 그리움이 스쳤다.

아이도 보고 싶지만 내 고양이도 보고 싶다.

아이에게 하루종일 쫓고 쫓기며 긴장하고 있을 내 불쌍한 고양이.


툇마루 끝쪽방에서 젊은 여자가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눈이 갔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나 이외에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듯 행동하는 중이니까.

곁눈질로도 여자가 나보다 젊어 보이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 머문 지 오래된 듯한 자연스러운 행동이 그녀의 발길 끝에 머물러 있다.


사찰의 바람은 툇마루가 있는 방향보다는 대웅전이 있는 마당앞쪽이 더 세다.

그래서인지 승복을 입은 사람들과 몇 명의 일반인들이 그늘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거슬릴 정도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 웃음소리조차 왠지 내 곁에 맴도는 게 싫어 가만히 눈을 감고 내가 조용히 죽을 방법을 생각해 본다.

휴대폰에 뭔가를 검색하는 건 죽은 후에 쪽팔리게 다 드러날 것 같아서 나름 창작적으로 죽을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입실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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