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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Jan 11. 2024

4. 혼자 다니는 여자

템플스테이 로망스

오후 2시가 되었나 보다.

승려복 같은 회색옷에 꽃무늬로 된 조끼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숙소 툇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무실로 모이란다.

짐을 두고 갈까 하다가 외부 관광객들이 많은 이 절에서 짐가방이라도 없어질까 봐 하는 의심병에 바리바리 양손에 짐을 들고 사무실 팻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미닫이 문을 열어제끼니 쉬익 하며 시원하다 못해 이가 시릴 정도의 에어컨 바람 아래서 몇 명의 직원들이 마치 동네 동사무소를 연상하는 듯한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하느라 바빠 보인다.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정작 인사를 하는 하는 이는 꽃무늬 조끼를 입은 여자뿐이다.


“어서들 오세요. 더운데 밖에서 기다리느라 힘드셨죠?”

“……..”


나야 뭐 입 다물고 안 보고 안 듣기로 결심한 혼자 온 여자이지만 나머지들은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온 여자들이다.

아니 정말 여자들밖에 없다.

고3딸을 끌고 온 내 또래 아줌마와 못마땅한 표정의 딸내미, 그리고 그녀의 손에 액세서리처럼 붙어있는 핸드폰에선 자동으로 게임이 돌아가고 있었다.

고교 동창들끼리 20년 만에 어디라도 가서 잠을 자고 와보자는 의지가 절밥 먹는 이곳으로 향했다며 꺄르르르 웃는 중년 여자 셋.

그리고 남자 친구와 함께 왔다는 이제 갓 스물을 넘을 것 같은 앳된 얼굴의 젊음이 흘러넘치는 여자아이와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는 구부정한 키 큰 남자아이.

그리고 왜인지 우울함이 온몸을 감싸면서도 괜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알 수 없는 혼자 온 여자인 나.


실은 내가 묵을 방이 갑자기 취소가 되면서 대기자인 내 차지가 되었고 혼자 방을 쓰는 대가로 3만 원을 더 추가해야 했다.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이곳으로 향했던 내 마음엔 세상 누구에 대한 궁금증 따위 존재할 리 없는 우울증 환자 신세이다.


“이꽃님님 외 2명은 그 방에서 세분 다 주무실 수 있도록 이불을 한 채 더 가져다 드릴게요.”

꽃무늬 조끼를 입은 여자가 셋이서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사무실 안이 천국이라며 털썩 주저앉아 있는 한 여성에게 본인이 입고 있는 회색 위아래 절복과 하늘색 조끼 그리고 방키를 건넨다.


이꽃님.

이름만큼 꽃스럽지 않게 세월의 풍파를 맞은듯한 가무잡잡한 피부, 우악스러워 보이는 손은 생활력 하나는 강하다며 주위사람들에게 칭찬을 듣지만 정작 자신은 일복을 타고 난 년이라며 신세한탄을 하고 살았을 것 같다.

그런 투박한 손이 두 손 공손히 모아 옷과 키를 받아 챙긴다.


“워메! 이거 나헌티는 안맞겄는디요! 한 치수 더 큰 거 없소?”


이제는 등산객들조차도 안 입을 것 같은 등산복 바지를 입고 조깅화를 신은 무리 속 여자가 갑자기 옷 한 벌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내가 봐도 족히 70킬로는 나갈 것 같은 다부진 몸매의 그녀는 언제나 옷을 편하게 입어야 제맛이라는 듯 아직 입어보지도 않은 법복을 교환하려 든다.

그러자 다른 두 여자들도 옷을 몸에 대보더니 자기들도 한 치수 더 큰 거로 바꿔달란다.


‘아…. 소란스러워… 하필 같은 날 스테이를 신청해서 정신 사납네’


꽃무늬 조끼 여자는 말없이 한 치수 더 큰 거 세벌을 들고 와 교환해 주며 애써 웃어 보인다.

본인도 왠지 그럴 것 같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미경 님 외 한분 따님”


그러자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게임을 하고 있는 다 큰 딸을 보며 한숨짓던 여자가 성큼 나와 옷과 키를 받아 든다.

옷을 본 딸은 게임을 하다 말곤

“쳇 나보고 이런 걸 입으라고? 난 싫어. 엄마나 입어 “

하며 다시 핸드폰 세상으로 눈을 돌린다.

얼굴이 빨개진 애미는 싸가지 없어 보이는 딸을 향해 잠시 째려보더니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그저 아무 말 안 들은 것처럼 무릎에 옷을 포개어 올려 두고 의자에 앉는다.


“정다슬님외 한분 오셨나요?”

그러자 젊고 어린 커플에 깍지 낀 손을 동시에 들며 왔다는 표시를 한다

요즘 것들은 창피한 것도 모른다

나는 저만할 때 신호등에서 남자친구랑 손잡고 신호 바뀌길 기다리가 어떤 할아버지가 난데없이 등짝을 후려갈겨 맞았는데…

“요즘 것들은 창피한 것을 몰러! 미친년놈들! 에라이!”

하며 침을 퉤 뱉고 가던 늙은이의 뒤 모습에 놀란 가슴 진정 시키기도 전에 잡았던 손을 황급히 놓았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두 분 중 남자분은 별채로 가시고요 여기 옷이랑 키 받으시고요 여자분은 여기 여자분들이랑 같은 건물에서 묵으실 겁니다.”


생이별을 당할 걸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여자아이의 커다란 눈이 똥그래져 남자 친구를 올려다본다.

남자애는 그래도 철이 좀 들었는지 여자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위로해 주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저것들은 절에서 합방할 생각을 한 거였어? 수행하는 스님들 생각은 눈곱만치도 안 하는 이 MZ들. 암튼 개념 없네 쯧’

하는 생각과 함께 나 왜 이렇게 라떼가 되어 젊은애들을 못마땅해하는지 헛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


“엄기언 님, 오셨지요? 혼자 쓰시는데 화장실 딸린 방으로 바꿔 드릴까요?”


혼자 방 쓰는 여자는 화장실도 공용 쓰기 힘든 반사회적 성향의 여자가 아님을 확실히 하려 최대한 멀끔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공용화장실 쓰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머물러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가며 혼자 온 여자에 대한 궁금함을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세 여자의 눈빛과 마주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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